[더피알=강미혜 기자] “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의 그 난감했던 상황을.
담배 한 개피 물고 진한 커피를 마시며 ‘꼬장꼬장한’ 말투로 기자에 ‘훈수’를 하던. 길지 않은 기자 경력에 단언컨대 가장 초난감 했던 인터뷰 순간을.
신인섭 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와의 첫만남이었다. 첫사랑도 아니건만 신 교수와의 첫만남은 그것만큼이나 강렬했다.
벌써 2년여 전이다. 당시 신 교수는 국내 최초로 한국PR사를 다룬 책 <한국PR의 역사, 1392~2010>(신인섭·이명천·김찬석 공저)을 출간한 터였다. (더피알 관련기사: 소셜미디어는 PR발전에 촉매제…PR이 나아갈 방향은 ‘Global’)
여든이 넘은 노(老) 교수를 인터뷰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약 2시간 동안 한국PR역사와 그 의미에 관한 신 교수의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극’ 공손의 말투로 ‘극’ 경청해야 했음은 불문가지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느 순간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신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화 한 마디 한 마디에 삐질삐질 땀 빼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새 이태원 펍(pub)에서 맥주 마시며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사이가 됐다.
물론 강렬했던 첫만남 이후에도 여러번 신선한 ‘서프라이즈’를 선물 받았다.
마감일은 물론이고 약속시간에도 단 한 번 늦은 적 없는 철두철미함, 새벽 4시 기상해 2시간가량 글로벌PR 동향을 훑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성실성,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PR기자를 하느냐는 일관성 있는 잔소리 등.
그런 신 교수가 요즘은 하루 5시간을 꼬박 책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국제PR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서다.
한땀 한땀 바느질 하는 심정으로 영어 원문 하나하나를 짚으며 집필하신단다. 그래서 하루 5시간에 1페이지 정도밖에 ‘진도’를 못 뺀다고.
“역사는 지금(현재)을 있게 한 뿌리다. 역사를 알면 현재 직면한 문제의 해답이나 미래 방향성을 알 수 있다. 글로벌적으로 공부할 게 많다.”
신 교수가 후학들을 위해 최신 업데이트 버전의 PR역사서를 남겨두고 싶은 이유다.
온 나라가 역사왜곡, 역사교과서 논란으로 시끌시끌한 이때 PR 분야에서도 학계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 PR역사를 심도 있게 논의해 보는 건 어떨까?
여든하고도 넷을 더 넘긴 노 교수의 열정이 PR계에도 퍼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