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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준비…전략 노출…탈락… 어디서 보상 받나요?

공기업 PT의 그늘-'리젝션 피’ <입찰탈락보상금>

기사승인 2010.04.06  16:11:43

최재영 jychoi@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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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홍보대행사는 최근 한 공기업에서 홍보 경쟁 PT(presentation/ 제안설명)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A사 대표는 이 공기업의 한 간부로부터 “당신네 회사도 한 번 참여해 보라”고 권유 받았다. 이 공기업이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사업비가 무려 5억여원이나 되는 이른바 ‘굵직한 건수’였다.

직접적인 권유까지 받았지만 A사 대표는 행복한 느낌은커녕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료 준비는 물론 PT를 준비할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 앞으로 입찰과 공개 PT까지는 12일.

A사 대표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마라톤 회의를 열었다.

최재영 기자
 


역시 준비기간이 너무 짧아 기한 내에 자료 준비를 마치기가 힘들다는 목소리가 컸다.

3시간의 난상 토론까지 벌였다. 입찰에 참여하자는 쪽과 포기하자는 쪽이 팽팽했다. 장시간의 토론 끝에 대표는 회사에 큰 이익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PT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A사는 대표는 PT를 위해 전 직원을 동원했다. 준비한 자료만 100여건. 몇일 밤까지 새며 홍보 시안을 만들었다.

가상 PT연습까지 했다. 클라이언트의 돌발 질문에 대비해 날카로운 질문방식으로 진행했다.


A사는 PT 당일 총 7개사가 참여한 사실을 알았다.

하나같이 PR업계에서 내로라 하는 유명한 홍보대행사들이었다. 이날 PT에는 공기업 간부 6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A사는 다른 홍보대행사의 전략을 알 수는 없지만 기존 방식을 벗어나 좀 더 공격적인 홍보전략을 제안했다. PT를 지켜본 이 공기업의 한 간부는 “다시 PT를 했으면 한다”면서 “좀 더 긴밀하고 밀접한 홍보방식 위주로 설명 해달라”고 주문했다.

3일간의 시간 밖에 없었던 터라 A사는 또 다시 전 직원들이 매달려 제안서를 전면 수정했다.

 

 

◇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홍보회사 두 번 죽이는 꼴”

 

최종 결과 A사는 탈락하고 C사가 선정됐다. A사는 훌륭한 PT였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아쉬움이 컸다. 이날 A사를 비롯해 경쟁PT에서 탈락한 업체는 이 기업의 간부로부터 “수고했다. 언제 밥 한끼 하자”는 자그마한 격려(?)를 받았다.

지금까지는 홍보대행사 라면 한번쯤 겪어본 경쟁PT의 상황이다.

입찰에 참여했던 홍보대행사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은 비단 경쟁PT에서 떨어져서만이 아니다. 경쟁 PT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수고의 대가로 받는 리젝션 피(rejection fee/ 탈락보상금)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리젝션 피는 노력과 시간을 보상해주는 일종의 위로금이다. PT를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부었던 만큼 최소한의 보상 제도인 리젝션 피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한결 같은 바람이다.


실제 A대행사는 이번 공개 PT를 준비하면서 500여만원의 비용을 들였다.

PT를 위해 들어간 실사 출력 등의 제반 비용이다. 실사출력은 발주사가 쉽게 이해하도록 디자인을 변경하는 작업이다. 빔 프로젝트를 고려해 색상을 최적화해야 한다. 또 공개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계약이행보증보험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보증보험은 입찰금액의 100분의 5 수준으로 보증보험료로 납부하는 금액은 5만~10만원 가량 된다. 이 보험료는 되찾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PT에서 탈락하는 즉시 증발한다.

더욱이 이 모든 비용에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A사가 공개PT를 위해 들인 돈은 800만~900여만원 규모로 3, 4건만 참여해도 수천만원을 쓰는 셈이 된다. 국내 유명 홍보대행사 20여개사와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리젝션 피를 받은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한 홍보대행사 대표는 “15년간 홍보업계에서 일 해오면서 리젝션 피를 받은 적도 없지만 받았다고 하는 홍보대행사가 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리젝션 피에 대한 인식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PR업계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 공개PT용 제안서는 논문 수준?

 

회사는 팀장급 이상에서 입찰크기(금액)에 따라 이사나 대표이사까지 나선다. 그러다보니 때에 따라서는 회사 업무가 마비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RFP(제안의뢰서/REQUEST FOR Proposal)방식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RFP는 발주업체가 홍보회사들에 내는 의뢰서다.

현재 대부분의 공기업들은 기본 제안서는 물론 공개PT에서 수많은 자료 제출을 요구한다. 현 회사의 현황은 물론 실적, 팀 구성, 계획 예산 등 에서부터 심지어 국내 PR시장의 현 상황을 담은 자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홍보회사들의 솔루션까지 포함하면 일반 제안서가 아니라 논문 수준의 제안서로 바뀐다. 물론 입찰 과정에서 실적 위주의 제안서나 컨설팅 중심적인 제안서 제출을 요구하는 등 간단한 제안서 제출을 주문하는 곳도 있지만 결국 공개PT에서 이 모든 과정을 요구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홍보회사들은 이 제안서를 ‘클라이언트들의 숙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클라이언트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을 해결해 달라는 의미기도 하다. 이런 과정 때문인지 공개PT 자체가 허구인 경우도 적지 않은 곳도 있다. 발주 의사가 없는 상황으로 자신들(해당부서나 팀)의 ‘기안서’ 작성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한 홍보회사는 지난해 초 한 공기업의 공개PT에 참여해 최종 3개 업체에 선정됐다. 심층적인 제안서와 PT를 요구해 진행했지만 지금까지도 업체 선정을 하지 않고 있다.

한 홍보회사 관계자는 “공개PT에서 과도하게 많은 서류와 자료를 요구하는 곳은 일단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며 “많은 자료를 요구하는 곳은 내부 기안에 사용할 목적으로 ‘가짜 공개PT’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 업체 정해놓고 ‘들러리’PT도

정상적인 입찰공고 뒤에 숨어 있는 ‘함정’도 홍보회사에는 위협적인 요소다.

이른바 ‘들러리 공개PT’다. 이미 입찰업체를 정해 놓은 상태에서 공개PT를 진행하는 것이다.


한 홍보회사 간부는 “말이 공개입찰이지 이미 특정업체를 정해놓은 경우가 많은 것같다. 공기업과 정부다 보니 공개입찰을 해야 하고 공개PT를 했다는 증거 자료를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 때문에 형식적으로 공개PT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이런 공개PT를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홍보회사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이미 선택한 업체가 유리하도록 입찰 기간을 짧게 잡는다. 짧을수록 좋겠지만 대략 1주일 내외다. 준비기간이 짧은 만큼 제안서에 담을 내용이 이미 선정된 업체에 비해 부족해 보이기 마련이다.

홍보회사로는 자신들이 선택되기 위해 짧은 시간에 인력과 자산을 총동원한다. 탈락하는 즉시 손해를 입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이런 과정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강제로 공개PT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한 홍보회사 간부는 “공개PT 기간이 촉박하고 비용과 액수 등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보면 이미 업체를 선정해 놓았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는다”면서 “이런 경우 홍보회사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 클라이언트측에서 직접 연락해 참여하라고 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거래처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대부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마디로 밉보였다간 다음 입찰부터는 아예 기본 제안서 제출조차 못할 수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추후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들러리’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간부는 “다음에 좋은 물건(입찰) 생기면 계약되도록 해줄테니 입찰에 좀 참가하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 공개PT 후 ‘노하우’ 유출 피해 심각

공개PT 이후 가장 심각한 문제는 PT가 끝난 그 시점부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홍보회사들이 힘들게 준비했던 PT자료가 고스란히 노출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홍보대행사 이사는 “몇년 전 한 공기업에서 공개 PT를 진행했는데 그 이후 다른 홍보대행사에서 우리 PT를 그대로 다른 회사에서 이용한 것을 봤다”면서 “나중에 알았지만 PT를 진행한 공기업 측에서 우리 PT를 다른 홍보회사에 제공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개입찰에 성공한 한 대행사 이사는 “예전에 입찰에 성공한 뒤 공기업에서 공개PT에서 탈락한 업체의 홍보 방식 일부를 차용하길 원했다”“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그대로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PT방식이나 프로젝트 일부가 노출되지만 속수무책이다. 갑과 을 관계라는 구조 탓 보다는 업계에서 관행처럼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공개PT는 정상적인 입찰방식이며 판단에 따라서 클라이언트 측에서 수정이 가능하지 않느냐”며 “제안서노출에 대해서는 순수물이 아니지 않느냐. 제안서 대부분은 이미 여러 홍보회사들이 그런 방식들을 운영 중이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밝혔다.


인식 부족 탓도 적지 않다. 이 관계자는 “공개 PT 내용들이 1급 보안을 요하는 것도 아니면서 어차피 업계에서 공개된 내용들로 제안서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보이콧’ 자세도 보였지만 워낙 경쟁사들가 많기 때문에 자중 노력이 힘든 상태라고 토로한다.
 

 

◇ 제안서 저작권 인식 부족…리젝션 피 지급해야

 

한 홍보회사 관계자는 “리젝션 피는 홍보회사들의 꿈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고 본다”면서 “리젝션 피 도입이 힘들다면 자료의 간소화만으로 홍보사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홍보회사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의 대부분은 과도한 자료 제출에 있다.

우선 요약본을 제출하고 양측 실무 담당자들의 논의만으로도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보회사 관계자는 “꿈 같은 이야기겠지만 실무담당자들이 만나 아이디어 회의만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안들인데도 공개PT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이나 담당자들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와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 홍보회사들의 입장에서도 시간과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는 콘텐츠 저작권 의식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심지어 영화, 음악, 서적 등을 무단으로 도용하면 처벌하는 등 강력한 조치까지 내놓았다.

이런 과정들을 홍보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만든 ‘제안서’는 저작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홍보회사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홍보회사로서는 경쟁PT를 반드시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이른바 ‘고급인력’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A사는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고 자부했다. 다른 대행사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재영 jychoi@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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