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커뮤니케이션 주체로 나서다
환자, 커뮤니케이션 주체로 나서다
  • 이미진·유혜영·김서연 (admin@the-pr.co.kr)
  • 승인 2013.01.22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헬스 커뮤니케이션 닥터] ‘힐링’을 위한 환자단체의 공감·소통 이야기

건강한 세상을 위한 건강한 소통, ‘헬스 커뮤니케이션(Health Communication)’.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듯, 헬스 커뮤니케이터들은 다양한 건강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고, 치료합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아직 헬스 커뮤니케이션은 어렵고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직접 나섰습니다. 헬스 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 ‘엔자임’이 그들입니다. 앞으로 ‘헬스 커뮤니케이션 닥터’ 코너를 통해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최신 트렌드와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큰 관심과 지속적인 성원 부탁드립니다.


[더피알=이미진·유혜영·김서연] “슬픈 죽음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는 의료계가 정보를 알리고 공유함으로써 실수로부터 배우는 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암제가 잘못 투여되는 의료사고로 생명을 잃은 정종현 백혈병 환아 어머니 김영희 씨가 ‘환자 샤우팅(Shouting) 카페’ 행사에서 의료계에 던진 따끔한 충고다.

▲ 샤우팅 카페에서 사례를 발표중인 고(故) 정종현군의 어머니 김영희씨.

지난 해 6월 서울 종로의 한 카페. ‘제1회 환자 샤우팅 카페’에서는 하소연할 데 없는 환자들의 억울한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소개된 종현이의 이야기는 급기야 공중파 방송을 타게 됐고, 병원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 제정을 위한 1만명 서명운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환자는 존중받아야 할 ‘소비자’임에도 의료현장에서 철저한 ‘을’(乙)이었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들어주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병원 앞에서 무작정 시위를 벌이다 업무방해로 저지당하기 일쑤였다. 이런 환자들이 전문가 못지않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무장하고 의료계의 주역으로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가 있다. 현재 환자단체에는 백혈병 환우회를 포함해 총 7개의 환우회가 가입돼 있다. 환자 및 보호자를 포함해 총 10만명 정도가 참여한다.

환자는 ‘아픈사람’ 아닌 ‘의료소비자’…의료개혁의 영향력자로 부상

환자 샤우팅 카페 역시 환자단체의 작품이다. 환자들이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소통 공간’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치유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에서였다. 3회째 운영되고 있는 샤우팅 카페에서는 환자들이 의료사고나 비합리적 제도로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토로하고 함께 공감하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매회 의료계에서는 물론이고 정계, 변호사, 언론인 등이 대거 참석한다.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지난 11월 행사에는 대선 후보들을 대신해 후보 부인들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초대장 발송, 현장 진행, 온오프라인 언론 보도는 물론이고 자체 촬영한 영상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확산 시키는 등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못지않은 PR활동이 전개됐다.

백혈병 환자들이 편리하게 골수 이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환자단체들이 나선 결과다. 이전에는 골수이식을 받으려면 백혈병 환자들이 직접 혈소판 헌혈자 20명의 명단을 병원에 제출해야 했다. 헌혈자를 구하는데 물질적, 시간적 추가 비용이 상당했다. 백혈병 환우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인원위원회를 접촉하며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다. 이는 2007년부터 ‘혈소판 사전 예약제’를 시행하게 되는 전초를 마련했다.

▲ 백혈병 환우회가 골수이식 환자들을 위해 운영중인 무균차량 클린카의 차량 내부.

최근에는 소비자시민모임과 함께 ‘의약품리베이트감시운동본부’를 만들어 의약품 리베이트 환수소송을 제기할 소송단을 모집하고 있다. 의약품 리베이트로 인해 약값에 거품이 발생, 환자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판단이다. 환자단체가 방관자가 아닌 의료개혁의 능동적 주체이자 영향력자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지금까지 환자들은 의료 정책이나 제도에 무조건 순응해야 하는 의료약자로 여겨져 왔다”며 “이제는 환자가 더 이상 그냥 ‘아픈 사람’이 아닌 ‘의료 소비자’로서 권리를 누려야 하며, 아울러 투명한 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진정성’이 중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환자단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증상이나 치료 과정, 주의사항 등에 대한 투병 정보를 나누는 정도의 활동을 해왔다. 그야말로 마음의 위안을 받는 작은 커뮤니티 수준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한 정보 지원을 넘어 환자들의 투병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진정한 동반자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백혈병 환우회는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위험이 높은 조혈모세포(골수)이식 환자들의 입·퇴원을 도와주는 특수 무균차량 ‘클린카’를 2009년부터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클린카를 추진하겠다는 환우회의 아이디어에 병원 관계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자가용이 있는데 누가 이용하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혈병 환자들의 감염에 대한 공포를 공감하고 있던 환우회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 추진했고, 그 결과 감염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클린카 1호를 지원받았다. 현재 백혈병 환우회는 환자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두 대의 클린카를 매일 운영하고 있다. 차량 내부에는 스크린을 설치해 투병 및 사회 복지에 대한 영상정보도 제공하는 등 서비스의 폭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이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은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지만, 모두가 환자의 마음을 알고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며 “전문가들이 쉽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던 사업들을 성공시킨 힘은 환자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려 애쓰고, 환자들의 수많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진정으로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또 “환자를 위한 행사를 만들었다고 해서 가보면, 의사와 후원사 관계자들이 줄줄이 나와 생색 내는 경우가 많아 실망하게 된다”면서 “환자와의 교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클린시네마 운영을 위해 무균 작업중인 영화관.

감염 우려로 인해 소아 백혈병 환자들에게 영화관람은 일종의 로망이다. 대부분 집에서 TV 시청으로 만족해야 한다. 백혈병환우회는 ‘클린시네마’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의료진과 감염관리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실내 항균화 작업을 거친 영화관을 빌려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해 주고 있다.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거라 이야기했던 사업이다.

이와 함께 헌혈하는 사람들과 수혈받는 사람들을 위한 교감의 장이 되고 있는 ‘헌혈톡톡 콘서트’, 올바른 약복용을 유도하는 ‘락(樂)&약(藥) 캠페인’ 등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이병관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광고홍보학부 교수는 “외국에서도 환자들은 의사와 병원을 평가하고 정책 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의료의 중심으로 나서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며 “헬스커뮤니케이션이나 사회적 마케팅(Social Marketing)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인 환자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설립 배경은?

2001년 11월 사법고시 2차 시험을 한창 준비 중에 아내가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아내는 건강해졌다. 이후 아내와 같이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다가 2005년부터 환우회 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 환자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만 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소규모 개별 환우회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고, 그래서 연합회 구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현재는 7개의 환우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분들만 약 10만명에 이르는 단체로 성장했다.

연합회의 환자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는?

나는 ‘아젠다 세일즈 맨’이다. 환자들이 현실에서 겪고 있는 문제점을 찾아내서 이를 아젠다화 해서 해결하는 사람이다. 이때 환자와의 ‘공감’은 필수적이다. 그 동안 내 일의 대부분은 환자의 사정을 듣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3~4개 병원을 오가며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늦은 저녁이 돼서야 일과를 마친 적도 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 도서관에서 마지막까지 공부를 하다가 불을 끄고 나올 때 느끼는 뿌듯함 같은 것을 느꼈다. 환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환자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이 환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환자들의 연합회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연합회의 향후 운영 방안은?

연합회와 백혈병 환우회 활동을 통해 습득한 여러 노하우를 다른 환우회에도 전수하고 싶다.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환우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서다. 진료실 내에서 환자와 의사가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매뉴얼도 만들고 있다. 가능하다면 오랜 문제인 암 환자들의 사회 복귀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싶다. 자원봉사자들과 단체들이 연합회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그 취지가 순수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익적인 일이라면 다양한 기관, 기업, 단체들과 협력을 모색해 볼 생각이다.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역시 재정이 문제다. 10만명에 달하는 든든한 지지자들이 있지만 4명의 상근자로는 더 많은 일을 해내는 데 한계가 있다. 또 하나는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환자는 사회의 관심이 절실하지만, 절대 동정해야 할 불쌍한 존재가 아니다. 연합회는 아직은 척박하지만, 이 땅에 환자중심의 보건의료문화를 뿌리 내리게 하는 데 헌신할 것이다. 그 혜택의 최대 수혜자는 지금은 건강하지만 미래 환자가 될 수도 있는 모든 건강한 사람들일 것이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후원처(www.kofpg.kr)
신한은행 100-026-762653
예금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