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선 후원, 아파트는 되고 라면은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
양학선 후원, 아파트는 되고 라면은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2.08.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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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너구리 사태’, 과연 얄팍한 홍보의 문제인가


[The PR=강미혜 기자] 어제(7일) 인터넷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양학선 너구리’가 치고 올라왔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양학선 선수가 농심의 라면 제품 ‘너구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발단은 양학선의 어머니인 기숙향 씨의 언론 인터뷰였다. 아들의 금메달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아들, 오면 뭘 제일 빨리 먹고 싶을까? 라면? 너구리 라면?”이라고 말한 감동적인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양학선과 너구리 라면의 관계(?)를 전 국민이 알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농심측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날 오전 즉시 양학선에게 ‘평생 너구리 이용권’을 주기로 결정했다. 한국 체조 역사를 다시 쓴 ‘국민적 영웅’이 자사의 라면을 좋아한다고 하니 회사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올림픽 스폰서기업이 아닌 농심이 올림픽의 ‘올’자도 꺼내지 않고 간접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농심의 이같은 결정은 네티즌의 반감만 불러일으켰다. 한 봉지에 겨우 800원하는 너구리로 생색내는 것이냐며 ‘숟가락 얹기식 홍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를 가격으로 환산해 “1년간 매일 한 봉씩 먹어도 29만여원, 10년이면 290여만원에 불과하다”며 농심의 ‘쫀쫀함’을 힐난했다.

한쪽에선 86년 아시안게임 육상경기 3관왕을 차지했던 임춘애 선수와 비교하며 농심의 구태의연한 홍보 전략을 꼬집기도 했다. “싼 너구리로 때우려 하지 말고 이참에 양학선을 너구리의 광고모델로 기용하라”는 네티즌 요구도 빗발쳤다.

이런저런 이유로 농심이 열심히 욕먹고(?) 있을 즈음, 다른 한편에서 ‘양학선 아파트’라는 검색어가 실시간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양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후 “부모님께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 편하게 모시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는데, 언론 취재 결과 그의 가족은 현재 비닐하우스에 거주하고 있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건설사가 미분양 아파트 한 채를 선물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해당 건설사는 SM그룹이라는 기업의 계열사 ‘삼라건설’.

이에 네티즌들은 “정말 통 큰 선물”이라며 해당 건설사를 치켜세웠고, 상대적으로 농심의 라면 후원은 더욱 초라한 모양새를 띄게 됐다. 요지인즉,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회사도 시가 2억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선물하는데, 대기업인 농심이 겨우 라면으로 때우면서 ‘양학선 홍보 효과’를 노리느냐는 것이었다.

광고모델 압력, 불매운동 등…올림픽 열기 편승한 ‘집단 땡깡’?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농심이 왜 국민적 비난을 받아야 하는 지 의문스럽다. 당초 농심은 양학선이 너구리 라면을 즐겨먹었음을 짐작케 하는 그의 어머니 얘기를 듣고, 평생 후원해주고 싶다고 회사측 의사를 전한 것뿐이다. 물론 양학선이 일약 스포츠 영웅으로 등극한 상황이기에 그의 명성에 너구리가 묻어가는(?) 홍보 효과는 분명 있다. 그렇다고 자사 제품을 좋아해주는 이에게 제품으로 후원해 주는 게 뭐가 그리 잘못된 것일까. 엄밀히 따지면 건설사 역시 자사의 제품인 아파트를 선물로 주려는 게 아닌가.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리는 양학선을 광고모델로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수의 ‘압력’에 가깝다. 현재 너구리의 광고모델로는 탤런트 백진희 씨가 활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의 힘만으로 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이나 마케팅 방향을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더욱이 ‘양학선 효과’의 최대 수혜자는 농심이 아니라 SM그룹이다. 대한민국에서 농심이나 너구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잘 없다. 그렇지만 SM그룹은 다르다. 회사 규모나 내실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SM그룹’이라는 회사명 자체가 낯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아파트 선물로 일반 대중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게 됐다. 2억여원이라는 아파트 가격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를 통한 홍보 값어치는 10배 혹은 100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양학선이 귀국하면 광주시청에서 아파트 기증식도 가진다고 하니 그로 인한 미디어 홍보 효과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양학선 후원을 둘러싼 농심과 SM그룹의 차이는 세간에서 얘기하는 ‘진정성’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전략적이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너구리 라면을 좋아하니깐 너구리를 선물로 주겠다는 농심의 생각이 다소 올드(old)하고 촌스러울 순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신중함이 결여됐음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얄팍한 상술로 몰아세워 ‘불매운동’까지 하겠다는 심보는 올림픽 열기에 편승한 일종의 ‘집단 땡깡’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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