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울타리 떠난 홍보맨, 광야에 서다
20년 울타리 떠난 홍보맨, 광야에 서다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8.02.21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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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두진 미래엔 대표

[더피알=서영길 기자] 5년 만에 다시 만난 최두진 미래엔 대표는 단단한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홍보인을 괴롭게 하는 미디어 환경이나 ROI 성과를 논하는 대신 “고생 무진장 하고 있다”는 말로 새롭게 전투력을 다지고 있었다.

최두진 미래엔 대표. 사진: 서영길 기자

그가 한 기업에서 홍보인으로 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20년이다. 언론홍보부터 디지털PR, 그리고 광고회사 임원까지 속된 말로 거칠 곳은 다 거친 그가 PR회사 대표로 나선지 이제 10개월 남짓. 아직까진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있다는 최 대표는 “글로벌 PR인이 되는 게 꿈”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샐러리맨에서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해 보니 어떠신가요.

평생 월급쟁이만 하다 대표가 되고 보니 남의 돈 빼먹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되네요.(웃음) 일단 대기업 그늘에서 당연시 누리던 게 다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피부로 느껴요.

예를 들면 이전 직장에 있을 때 제 신뢰도가 100%였다면, 지금은 50% 미만인거죠. ‘네 실력은 알지만 네 회사가 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는 말도 들었어요. 솔직히 이런 벽은 창업 후부터 계속 느끼고 있고요. 그래도 내 사업체를 차리고 뛰다보니 필드를 직접 체감할 수 있고, 거기서 새로운 안목과 도전 정신이 생기기도 해요.

창업 후 가장 적응이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창업 초기 주변에 사업하는 분들이 항상 해주는 말이 있었어요. ‘어깨에 힘 빼’라는 말이었죠. 처음엔 그 의미가 뭔지 몰랐는데 이제 조금씩 실감을 하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네’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맞다, 틀리다 얘기하려는 습관이 아직 남아있어요.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대표가 싼 똥’ 치우느라 고생이 많죠.(웃음)

또 하난 매우 현실적인 얘긴데, 기자들을 만날 때 저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뀐 걸 보면 아직도 적응이 어려워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더 전투력이 올라가더라고요.

PR회사를 차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저는 준비 없이 퇴사한 케이스에요. 그래서 초기엔 재취업을 하려고 알아봤는데 잘 안됐죠. 이후 시장 조사를 해보니 PR회사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5개월 준비해서 창업해버린 거죠.

전(前) 직장에 있을 때 베트남 현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이곳 홍보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겠다는 자신도 있었고요. 근데 그 전에 무역회사는 어떤지 경험해보려 물건을 베트남에 수출해본 적도 있어요. 솔직히 돈이 안되더라고요. 바로 접었죠.

책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두진 대표. 사진: 서영길 기자
책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두진 대표. 사진: 서영길 기자

사명이 미래엔인데 어쩐지 귀에 익숙합니다.(웃음)

‘미래’와 ‘앤드(&)’를 합쳐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은 사명이에요. 근데 짓고 나서 보니 교과서를 만드는 회사 이름과 똑같더군요. 그거 보고 따라한 건 아니고 와이프와 함께 머리 짜내서 지어놓고 난 후에 같은 사명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미래엔은 어떤 분야에 특화한 회사인가요. 차별화나 강점은.

분야를 정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디를 어떻게 공략해야겠다는 전략은 있어요. 제 장점이 한국 언론홍보와 베트남 시장 상황, 현지 언론을 잘 안다는 점이거든요. 양국에 걸쳐 언론홍보에 일단 치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유력 경제지와 베트남 최대 경제지 간 3자 협의 중에 있고요. 국내에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그 나라 경제도 한창 성장하고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봐요.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바깥은 지옥’이라는 미생의 대사는 많은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렸죠. 대기업 울타리를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도 딱 그랬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주변의 반대가 심했죠. 특히 가족은 왜 그만뒀냐며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망이 심해요.(웃음) 버는 것보다 경비로 들어가는 게 더 많은 상황이니…. 인하우스에 있는 지인은 내가 어떻게 되나 주시하겠다는 말을 한 사람도 있어요. 실험실 쥐가 된 셈이죠. 그래도 베트남 시장이 새로운 분야니까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는 분도 있고 투자해 주겠다는 분도 있어 고마워요.

기업에서 홍보 한 우물을 파셨는데 창업 후 관점이나 생각이 달라지진 않았는지.

관점이라고 하긴 쑥스럽지만 인하우스에 있을 땐 제가 보도자료를 내면 언론에 당연히 보도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창업을 하고 보니 전혀 안 먹히더라고요. 물론 기존 인맥을 통해 기사화를 시키고 있긴 한데. 솔직히 예전엔 그런 당연함에 대한 고마움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작은 업체들이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매일 고민합니다. 미디어에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플랫폼 채널에서 홍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여기에 언론홍보를 어떻게 결합해 시너지를 낼지 연구 중이에요.

그런데 대표님은 어쩌다 홍보인이 되셨어요.

1997년쯤에 포스코 베트남 사업부가 정리되며 보직이 사라졌어요. 회사서 저보고 가고 싶은 부서를 정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사 쪽에다 홍보실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제 스스로 홍보인의 길을 택한 거라 볼 수 있는 거죠.(웃음) 그때 알고 있던 부서가 홍보실밖에 없기도 했지만, ‘홍보’라는 이름이 괜히 이뻤어요. 입사 6년차에 홍보일에 대해선 1도 모른 채, 막연하게 기자들과 술 먹는 걸 주 업무로 알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홍보인이 됐고, 평생의 업(業)이 된거죠.

포스코 옷을 벗기 전 에이전시로 이직할 생각은 없으셨는지요.

솔직히 젊었을 때 에이전시 쪽으로 이직을 고민해 본 적은 있어요. 하지만 거기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이 없었죠. 경쟁이 치열한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보니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포스코에서 나온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스카웃 제의가 없었냐고 묻더라고요. 그땐 솔직히 ‘이 정도 경력이면 에이전시에서 연락 올 때도 됐는데’ 하는 기대도 있었죠.

그러던 중 지인이 “철강 업계 중에 홍보대행 맡기는 회사가 몇 개나 있느냐?”고 물어 보길래 “없죠”라고 했어요. 그 대답과 동시에 에이전시 입장에서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거죠.(웃음) 포스코가 소비재 기업도 아니고, 홍보대행을 쓰는 곳도 아니니까.

계속 한 직장에서만 일을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이것저것 다 해봤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어요. 다만 2년 정도 디지털PR(포스코 소셜미디어추진반) 분야를 맡아 이끈 경험이 있는데, 업계에선 이걸 경력으로 안쳐주더군요. 인하우스에선 이래저래 만들라고 지시만 할 줄 알지 실질적인 실행이나 구축은 안 해 봤다는 게 이유였어요.

근데 따지고 보면 이 말이 맞잖아요. 그래서 업무 일선에 있을 때 이런 걸 공부해 뒀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해요. 그 밀린 숙제를 지금 하고 있어요.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웃음)

최 대표가 미래엔의 메인 플레이어 강경인 이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서영길 기자
최 대표가 미래엔의 메인 플레이어 강경인 이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서영길 기자

근래 전통 홍보가 많이 위축됐습니다. 언론홍보의 경우 이슈나 위기관리만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홍보 방법도 변해간다지만 전 아직까지 언론홍보의 가치가 크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예전보다 대중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이 높아진 것뿐이지 뉴스에 대한 공신력은 여전히 건재하거든요.

요즘 젊은이들만 봐도 어떤 제품을 하나 사더라도 우선 검색을 하잖아요. 하지만 뉴스에서 검색이 안 되면 신뢰를 하지 않죠. 즉 기사가 있어야 믿는다는 거예요. 국내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베트남도 똑같아요.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 언론홍보냐’고 반문하지만 막상 자신의 일상생활에선 언론 기사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신뢰를 보이는 경향이 커요.

20년차 홍보인이자 신참 비즈니스맨으로서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나요.

이뤄질지 모르겠는데, 글로벌 PR인이 되는 게 꿈이에요. 전 세계를 뜻하는 건 아니고 동남아 위주의 글로벌.(웃음) 특히 동남아 시장이 뜨고 있으니까 베트남을 기점으로 글로벌 PR회사로 미래엔을 키워내는 게 지금의 목표입니다.

대표님처럼 창업을 고려하거나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충분히 준비하고 나오라는 거예요. 제 경우는 사업체를 차려놓고 시작한 케이스에요. 고민을 완벽히 하고서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든데, 그런 과정 없이 나왔으니 낭비하는 시간이 길었죠. 또 중요한 건 뛰쳐나와서 고민하면 가족 생각, 돈 생각이 나서 뭘 하더라도 주춤거리게 된다는 점이에요.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가량을 홍보업에 매달리셨는데, 최 대표님께 홍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의 성장동력이자 무수한 기회를 준 고마운 동반자입니다. 홍보는 공부만 한다고 저절로 알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홍보를 업으로 삼으려면 각 분야에서 박학다식하게, 또 얕지만 넓게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건 책으로만 알기 어렵죠.

저도 사실 젊었을 땐 사회 문제나 환경 문제 같은 덴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홍보를 하며 이런 부분은 물론 해외투자, 교육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지식 역량이 굉장히 넓어졌어요. 그래서 홍보는 나의 성장동력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고마운 존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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