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안과 밖이 다른 이름…혼란하다 혼란해
회사 안과 밖이 다른 이름…혼란하다 혼란해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7.12.1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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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으로 보는 기업문화<下> 30대 그룹 직제 현황과 함의

▷저기요… 과장님? 책임님? 매니저님!?에 이어…

[더피알=조성미 기자] 국내 30대 그룹사 직제현황을 파악해 보면 파격보다는 점진적 변화 흐름이 읽힌다. 창의적·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꾸준히 개편을 시도하지만, 덩치가 큰 조직의 특성상 전통과 관행도 여전히 중요한 고려 요인일 수밖에 없다.

직급에 차별을 두지 않고 호칭을 통일한 기업들도 홍보팀 등 외부와 협력하는 일이 많은 부서에 한해선 외부용 직급을 별도 사용하기도 한다. 기업만의 고유 체계만을 강조하다보면 외부에선 호칭이 낯설거나 어렵다는 민원이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직급체계는 다른 기업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이유에서 직급 혹은 호칭 체계를 변경했다가 원상복귀한 사례들도 있다.

포스코는 사원-대리-과장-차장-리더(팀장)와 같이 타사의 부장에 해당하는 직급에 대해 리더의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대리·과장을 매니저로, 차장을 시니어 매니저로 지칭하던 것을 폐지하기도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고객사에서 인식하기 쉽도록 본래 직급을 부르는 방식으로 호칭만 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의 경우 2012년 말 자유로운 소통을 지향하고자 위계 질서가 분명한 직급에서 사원-매니저-팀장의 3단계로 간소화했다. 하지만 대외활동을 하면서 대리~부장이 모두 매니저이다 보니 혼란스럽다는 말이 나와 2015년 3월 종전 체계로 돌아갔다.

대우건설은 업의 특성상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체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컨설팅 과정을 거쳐 스태프(staff)-어시스턴트 매니저(assistant manager)-디퓨티 매니저(deputy manager)-매니저(manager) 4단계의 영문 직급을 선제적으로 도입했지만 경영환경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2004년 다시 변경했다. 건설사의 경우 현장에 나가는 일이 많고 직책에 따라 명확하게 업무가 나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KT는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직급체계가 회귀했다. 지난 2009년부터 직급 대신 매니저라는 호칭을 사용했는데, 당초 기대대로 수평적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됐고 승진이라는 보상에 따른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2014년 다시 옛 시스템으로 돌렸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은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상당수 기존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김용근 포스코경영연구원 경영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기업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국내 중심의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직제 변동 에 대한) 니즈가 없을 것”이라며 “직급은 대외 커뮤니케이션에 가장 중요한 것인데, 밖에 나가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비즈니스를 할 때 주는 혼란에 대한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직급체계 변화에 앞서 동기부여 방식이나 성과가 공정하게 평가되고, 그에 따른 보상 체계가 탄탄하게 갖춰져야 한다”며 “남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호칭 변화 ≠ 문화 변화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 가치를 내걸고 직급체계에 손을 대지만, 호칭만으로 조직문화가 바뀌는 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유준희 조직문화공작소 AIPU 대표는 “인사제도의 작은 부분일 뿐인 직급체계 하나가 조직문화를 바꾸는 트리거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것”이라며 미국 온라인 신발의류업체인 자포스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혁신을 위해 수직적 구조를 없앤 자포스는 창립 초기부터 10여년 동안 가치를 기반으로 조직이 운영되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홀라크러시(holacracy· 자율경영)를 2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자포스만의 스타일로 체화했음에도 관리자급에서 30%가 자진사퇴하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직급 뿐 아니라 평가 보상 등 모든 인사제도 모두 맞물려 본질을 바꿔야 한다.

이처럼 단순히 호칭을 바꾼다고 해서 기업문화가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또한 직급체계는 인사제도와도 밀접하게 닿아있는 만큼 거시적 관점에서의 깊이 있는 고민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수평적 조직문화라는 것은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권위주의적 문화면 호칭을 아무리 바꿔도 본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말할 수 없다”며 “리더가 달라지고 일하는 방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제도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리더의 역할을 강조한 김용근 수석연구원은 “물리적인 직급방식을 바꾸더라도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리더가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급에 상관없이 개인 역량에 따라 적절한 일을 주고 직접 보고 하고 직접 완료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이양을 리더가 얼마나 실천하는가가 수평적 문화 조성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유준희 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문화의 목적성과 방향에 대한 욕구를 구성원 사이에서 형성하는 작업이 충분히 선행된 후, 직급이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 바꿀 것”을 조언하며, 직급 뿐 아니라 평가 보상 모든 인사제도 모두 맞물려 본질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인사제도 보다도 구성원 각자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일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고 그 자체로 가치와 의미, 성취를 경험할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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