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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넓어진 관계, 가지 치는 사람들

‘함께’를 외치지만 ‘홀로’를 추구하는 인간관계의 이원화

기사승인 2017.10.27  09:11:28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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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서영길 기자] 인맥의 홍수 시대다.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SNS 계정으로 손쉽게 인맥 지도를 넓혀간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활발한 인적 교류와는 반대로 오프라인은 더욱 개인화되고, 좁은 관계로 흘러가는 게 최근의 추세다. 여기에 무늬만 친구인 온라인 인맥에 대한 다이어트 바람도 불며 새로운 서비스들이 나타나고 있다.

카·페·인(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SNS의 일상화로 소통과 관계 맺음이 그 어느 때보다 수월해졌다. 남녀노소 누구나 SNS 계정 하나 정도 있는 만큼, 마음만 먹으면 인맥을 넓혀갈 수 있는 요즘이다. ‘한 사람만 건너면 모두 친구’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처럼 온라인에선 쉽고 빠르게 관계가 형성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에선 혼술·혼밥을 선호하는 등 고립과 차단의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한다. ‘함께’를 외치지만 ‘홀로’를 추구하는 인간관계의 이원화라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 동아일보와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내놓은 설문조사를 보면 이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난다. 성인남녀(20~29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페이스북 친구가 100명 이상 된다고 응답한 이들은 약 62%에 달했다. 500명 이상도 4.7%로 나타났다. SNS 계정만 열어 놓고 있으면 수백 명과 친구로 맺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의 화려한 이면에는 관계에서 오는 회의와 피로감이 존재한다. 같은 조사에서 ‘SNS 속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낀다’는 질문엔 41.4%가, ‘더는 온라인에선 친구를 늘리고 싶지 않다’는 질문에는 73.8%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건설업에 종사하는 30대 직장인 김정현씨는 “카톡에 등록돼 있는 친구들 중 업무 상 맺어진 관계를 빼더라도 ‘진짜 친구’는 10%도 안 되는 듯하다”며 “심지어 이름만 봐서는 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대 땐 억지로라도 인맥관리를 했는데 이젠 부질없게 느껴진다. 혼자가 편하다”는 속내를 전했다.

한 작가가 온라인 인맥의 허상을 지적하며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최근 출판기념회를 연 한 작가도 자신의 SNS에 “제 페친이 1300명인데 그 중 2%인 30명쯤은 (행사에) 올 줄 알았는데... 마음으로만 300명 온 걸로 생각하렵니다”라며 페이스북 인맥의 허상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온라인 인맥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현실 사례다.

낯선 당신 ‘아웃’…인맥 다이어트

온라인 인맥에게 피로감을 느끼는 또 다른 원인은 스마트폰을 켜면 쏟아지는 무늬만 친구들의 ‘안 궁금한’ 소식이다. 친구라는 타이틀을 갖고는 있지만 그다지 관심도 없고,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생활이나 사진, 소소한 이야기들이 내 생활 영역으로 들어오는 게 다반사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4월 조사한 내용을 보면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물음엔 무려 85%가 ‘있다’라고 답변했다.

이 때문에 비대해진 온라인 인간관계에 감량을 시도하는 이른바 ‘인맥 다이어트’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SNS로 얕고 넓게 퍼진 양적 인맥을 정리하고 질과 깊이를 중시하겠다는 의도다.

최근 직장을 옮겼다는 20대 후반 서정운씨는 “기존 회사의 업무 특성상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친구를 보이는 대로 늘렸는데, 직장을 옮기면서 업무 연관성이 없어져 대부분 삭제했다”며 “이들이 내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실제 인맥 위주로 친구를 정리했다”고 전했다.

젊은층 위주로 나타나는 이런 흐름에 대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진단했다. SNS로 인해 인맥 형성이 쉽고 빨라진 만큼 친구 관리는 어려워졌다는 게 그 이유다.

설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인맥 관리라는 개념은 늘 있어왔다. 단지 온라인이 발달하며 범위가 넓어지고 관리할 친구가 많아지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슈가 된 것일 뿐”이라며 “결국 인맥 다이어트는 상대에게 상처 안주고 본인도 스트레스 받지 않겠다는 젊은층의 ‘쿨한 방식’으로 보면 된다”고 분석했다.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김용섭 소장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인맥 다이어트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우리 사회가 과도한 인맥주의로 흘러가는 면이 있는데, 최근 젊은층 위주로 일어나는 인맥 다이어트는 굉장히 긍정적”이라며 “옛날식 인맥 개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 구조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관태기·티슈인맥이 낳은 침묵 서비스

달라진 인간관계 세태를 잘 보여주는 신조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관태기’와 ‘티슈 인맥’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관태기를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에 권태를 느끼는 이십대”라고 정의하며 관태족의 특징을 △면대면 대화나 전화보다 문자가 편하다 △3명 이하 소규모 모임을 선호한다 △어색한 자리에서 대화를 이어갈 자신이 없다 △더 이상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려 노력하고 싶지 않다 등으로 설명했다.

이니스프리의 두 종류 바구니. 이니스프리 제공

티슈 인맥은 간소화를 넘어 일회성 관계를 의미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필요할 때만 만나고 소통하는 사이를 일컫는다. 스마트 세상답게 최근엔 티슈 인맥을 만들 수 있도록 주선해 주는 앱도 등장했다. 혼밥족끼리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앱이나 모르는 사람 간에 대화나 영상통화를 연결하는 앱, 저장된 연락처를 분석해 인맥 다이어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관계 정리를 도와주는 앱 등이 나왔다.

점점 좁고 개인화되는 오프라인 인간관계에 발맞춰 마케팅 형태도 1인 맞춤형으로 바뀌고 있다. 혼자 사는 가구가 많은 대학가 주변으론 1인 노래방이나 1인 전용 고깃집 등이 성업 중이고, 최근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고객 응대 풍토까지 바뀌는 모양새다. ‘침묵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예전엔 무관심과 불친절로 여겨졌던 침묵이 지금은 고객을 위한 배려로 인식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지난해 8월부터 일부 매장 입구에 두 가지 종류의 바구니를 설치했다. ‘혼자 볼게요’와 ‘도움이 필요해요’가 그것으로, 고객은 필요에 따라 원하는 바구니를 들고 매장에 입장하면 된다.

혼자 볼게요 바구니를 든 경우 매장 직원들은 고객에게 말을 걸거나 따라다니지 않는다. 반대로 도움이 필요해요 바구니를 들면 직원이 직접 응대하며 제품을 추천하고 화장품 선택에 도움을 주는 식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5개 매장에서 먼저 시작한 침묵 서비스는 고객 반응이 좋아 현재 40개 매장으로 확산됐다.

이니스프리 마케팅팀 황도희 팀장은 “고객들이 직원이 다가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점에 착안해 시작하게 됐다”며 “저희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로 화제가 돼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올리브영과 롭스 등 드러그스토어 매장 역시 침묵 서비스를 고객 응대 매뉴얼에 포함시키고 있다.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고 요청이 있을 때만 응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매장을 찾은 이들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게 되면서 머무는 시간도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택시 영역까지 침묵 서비스를 도입했다. 교토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야코 택시회사는 지난 3월부터 ‘침묵 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열 대가 시범 운행되고 있는 해당 택시의 조수석 뒤편에는 ‘기사가 말 거는 것을 자제 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침묵 택시의 기사들은 인사할 때와 목적지를 물을 때, 계산할 때, 손님이 질문할 때를 제외하고는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불편한 소통 < 편리한 단절

침묵 서비스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사소한 관계 맺기도 꺼려하는 요즘 젊은층의 라이프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서비스 업계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간파해 불편한 소통보다 편리한 단절을 선택하며 젊은 소비자의 니즈에 맞추고 있다.

설동훈 교수는 “온·오프라인 인맥으로 인해 피로도가 높은 현대인들이 불필요한 관계에까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심리를 적절히 파고든 서비스”라고 평가했다. 설 교수는 “예전엔 혼밥하면 주위에서 이상하게 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식당에서도 1인을 위한 서비스가 많다”며 “이런 흐름을 노린 침묵 서비스는 여러 업종에서 변형돼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섭 소장은 조금 다른 시각을 피력했다. 불필요한 관계를 맺기 싫어서라기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 없어진 상황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온라인에서 쇼핑하는 게 익숙해진 최근의 소비자들이기에 검색을 통해 이미 제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경우가 많다”며 “직원들의 도움이 고객들에게 실제로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한 여성이 혼밥을 즐기고 있다. 뉴시스

여러 각도에서 침묵이 각광받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기존 업종 뿐 아니라 미용실,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도 이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속 올라오는 실정이다. 특히 국내에도 침묵 택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울신문이 지난 8월 택시 승객 11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9.1%(87명)가 침묵 택시 도입에 찬성했고, 반대는 20.9%(23명)에 그쳤다. 모수가 많지 않아 해당 수치를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침묵 택시 도입에 여론이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행 따라 침묵 서비스를 마케팅 소재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할 점이다. 이와 관련,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대표는 “지금까지는 힐링이 화두였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힐링을 얘기했는데, 이젠 관계 단절을 얘기한다”면서 새로운 현상으로 부각된다고 해서 마케팅에 그대로 활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큰 고민 없이 따라간 유행 마케팅이 자칫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우선 자사 브랜드와 유행과의 적합성을 따져보고, 그 유행이 왜 일어났는지 사회적 원인을 찾아 적절한 방법으로 마케팅에 접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에선 침묵 서비스의 확대가 우리 사회를 더욱 파편화시키고 각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최근 젊은층에서 나오는 관계 단절 흐름과 침묵 서비스가 각광 받는 분위기는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라고 우려를 나타났다.

구 교수는 “온라인에서의 관계가 오프라인으로까지 연결돼야 비로소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온·오프라인 관계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를 한 때 유행이 아닌 언제든 사회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현상으로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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