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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에서 짠테크로…소비의 두 얼굴

지갑닫는 소비자 잡으려면? “이미 구매한 사람에 집중”

기사승인 2017.10.13  14:46:13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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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사면 100% 할인입니다.”

[더피알=이윤주 기자] 홧김소비, 시발비용, 가치소비, 탕진잼…. 지금까지 소비 트렌드는 ‘지갑을 연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제는 “지갑을 닫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튜핏!”과 함께.

마케터가 들으면 기가 찰 멘트가 하나의 유행어가 돼버렸다. ‘절약’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재조명되기 시작하면서다. 얼마 전 종영한 예능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이 도화점이 됐다.

‘짠돌이 연예인’으로 유명한 김생민은 시청자들의 영수증을 분석해 소비 패턴과 절약법을 제시했다. 흡족한 소비에는 ‘그레잇’(Great)이라며 칭찬하고, 맘에 안 드는 과소비에는 ‘스튜핏’(Stupid)이라고 꾸짖는다.

“음악은 1분 미리듣기면 충분합니다” “충동구매 대신 충동적금을 드세요” “필라테스 대신 어깨 펴고 산책하세요” “웨딩 페디큐어 할 필요 없습니다. 웨딩드레스 때문에 안 보이고, 바닷가에서는 모래로 가리세요” 등 그의 주옥같은 어록이 각종 온라인 사이트와 SNS를 통해 전파되며 ‘통장요정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언뜻 ‘너무 과한 얘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재치 있는 말솜씨와 개그로 거부감을 승화시켰다. ‘한 장의 영수증에 인생이 담겨 있다’는 가치관으로 소비에 철학을 더하는 모습은 욜로(YOLO, 현재를 즐기다) 가치관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시청자들의 영수증을 분석해주는 '김생민의 영수증' 방송 캡처.

절약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것은 돈 쓰는 행위 그 이상의 가치로 소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저서 <소비의 역사>에서 “소비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둘러싼 행위이며, 사람들은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설 교수는 “김생민의 영수증을 보면 엄마를 위해 소비할 땐 ‘슈퍼 효도 울트라 그레잇’을 외친다”며 “엄마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효도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등 무조건 짠돌이가 아니라 소비를 의미를 더해 잘 풀어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구두쇠 이미지의 변신

김생민 신드롬이 나타나기 전에는 69억원 빚을 갚는 연예인 이상민이 있었다. 개인 파산을 신청하지 않고 거대한 빚을 착실히 갚아나가는 모습을 통해 그는 ‘궁상민’(궁상+이상민)이란 이미지로 거듭났다.

카카오페이 이상민 이모티콘.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즐기는 데 돈을 많이 들일 필요가 없다”며 절약을 생활화하는 모습으로 시선을 끌었다. 채권자의 집 4분의 1을 임대해 거주하면서도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가하면, 5만9000원짜리 후쿠오카 초저가 여행으로 소소한 재미를 찾았다. 또 가장 저렴한 식재료인 라면 위에 한우 한 조각을 얹어 ‘한우라면’을 만들어 먹는 등 본인만의 허세를 유지하며 시청자와의 교감에 성공했다.

허세와 궁상이 묘하게 콜라보 된 캐릭터가 인기를 얻자 광고계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카카오페이 광고에서는 “내 계좌번호도 아닌데 외울 필요 없잖아” “보내기는 편해야지”라며 그의 현실 상황을 반영한 대사가 등장했으며, ‘돈 보내’ ‘아~주 칭찬해’와 같은 유행어를 삽입한 이상민 이모티콘도 출시됐다.

아울러 KB손해보험은 ‘알뜰족 이상민에게 묻다’를 콘셉트로 광고를 제작했고, 위메프는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를 개사한 ‘싸다 위메프송’을 선보이기도 했다. 절약이 재미로 연결되면서 과거엔 부정적이었던 ‘구두쇠’ ‘짠돌이’란 이미지가 실속을 챙기는 긍정적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절약 노하우를 담은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 모임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특히 2030 세대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다.

20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20대 사회 초년생 재테크 노하우’에는 다양한 경제 관련 정보가 올라온다. 이를테면 1일부터 31일까지 달력에 주머니를 매달아 일정금액을 분배해 지출하게 하는 ‘달력포켓’ 등을 소개한다.

생활비달력 포켓캘린더. 출처: 1300K

4만명이 가입한 ‘월급쟁이 재테크 연구 카페’에서는 매일 500원 적금, 점심 도시락 싸기, 21일 강제저축, 경제뉴스 읽기, 무지출데이, 미니멀라이프로 살기, 야식 뿌리치기 등 소소한 절약 습관에 도전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회원들은 메신저를 이용해 자신의 절약담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인증하면서 서로를 감시한다.

모범 케이스를 접하면 “금액이 많이 늘었네요, 강저(강제저금) 응원해요” “꾸준히 하신 게 그렇게 돌아왔네요” “노력한 결과가 이렇게 나오는군요 대단하세요”라며 북돋아주기도 한다.

지갑 닫는 소비자 붙잡기

젊은층을 중심으로 절약을 독려하는 짠테크 콘텐츠가 퍼질수록 한편에선 고민이 늘어간다. 바로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따라 금융권은 달라진 기류에 발맞춰 너도나도 짠테크 상품을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젊은 세대를 겨냥해 커피 한 잔 값을 매일 절약하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취지의 ‘KB라떼 연금저축펀드’를 출시했다. EB하나은행은 강제적금형 ‘오늘은 얼마니?’ 상품을 내놨다. 매일 적금 금액을 묻는 문자에 목표된 금액을 답장하면 자동으로 이체해주는 방식이다.

하나은행 '오늘은 얼마니? 적금' 문자.

우리은행도 52주 짠플랜, 매일매일 캘린더플랜, 1DAY 절약 플랜 등으로 나뉘어진 ‘위비 짠테크 적금’을 선보였다.

마케터들은 어떤 전략을 짜야할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살지 안 살지 모르는 사람보다 산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대웅 브랜드액션 대표는 절약을 외치는 지금 시점이 소비자가 생각하는 ‘최애’(최고로 애정) 브랜드가 걸러질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난 지금 아껴야 하지만 이 브랜드는 버릴 수 없어’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 대표는 “마케터가 가끔 간과하는 개념이 ‘포기’”라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에게 돈을 쓸 수 있는 소비자에게 마케팅 메시지가 노출되게끔 타깃팅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소비자 중에서 한 번 사고 말거나, 구매할 것처럼 하다가 결국 사지 않는 등의 체리피커보단 여러 번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재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철환 적정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소비자들이 왜 사야하는가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집중해야 한다”며 콘텐츠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는 행위는 구매 자체가 목적이 아닐 때가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와 관련, 김 소장은 “제품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제공하고자 하는 기회,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도와주는 솔루션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 부분을 건드려 제품을 사야하는 이유를 제대로 인지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절약이란 화두는 IMF 이후로 계속 이어져온 것인 만큼 새롭게 접근하기보다 기본에 충실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커머스 회사에 근무하는 마케터 A씨는 “최근 절약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지만 실제로 마케터들에게 와 닿는 정도는 미미하다”며 “이럴 때 일수록 더욱 더 합리적인 소비를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주말엔 약속을 고민하지 말고 집에 있어’라고 한다면 ‘집에 있으니까 OO를 이용해’라고 권하는 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이불 밖은 위험해’에 착안해 ‘위험하니까 이 베개를 사’라고 하는 등 어떻게든 구매와 마케팅을 연결시켜야 한다는 조언이다.

욜로소비 vs 노머니족

절약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심리는 절대 가볍지 않다.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불안정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가 안 좋고, 취직이 안 되고, 저소득층이 많아지는 현상이 확산되다 보니 임계점이 온 것”이라고 보며 “이런 것들의 고육지책으로써 절약하는 라이프스타일이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침체된 사회 모습을 반영해 미디어에서도 콘텐츠 소재로 활용된다. 김 교수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를 찾다보니 90%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문제를 드라마타이즈(각색)한다”고 설명했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근검절약 말고 선택할 것이 없는 젊은층의 공감 포인트를 건드린다는 것.

흥미로운 점은 최근까지 ‘탕진잼’ ‘홧김소비’ ‘시발비용’ 등 일단 지르고 보는 소비가 젊은층을 보여주는 트렌드로 주목받은 사실이다. 불확실한 앞날보다 현재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겨 구매로까지 이어지는 ‘욜로 소비’와 최대한 아끼면서 돈을 쓰지 않는 ‘노머니족’으로 갈린 양상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소비의 두 얼굴에 대해 “생산과 분배의 역할보다는 행복감을 느끼나 못 느끼나 정도로 판단되기 때문에 소비패턴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언론, 미디어, SNS 등 사회 전체가 소비를 행복감을 느끼는 척도로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 교수는 “개인의 가치와 행복을 소비에서 찾는 건 허무한 거다. 자기 소비 수준에 맞지 않게 과소비하는 문제는 스스로 고쳐야 한다”며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트레킹을 하는 등 문화예술을 감상하는 힘을 키워 소비 광고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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