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그들이 ‘워킹’하기까지
100세 시대, 그들이 ‘워킹’하기까지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7.08.10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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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뉴시니어라이프 <上>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더피알=이윤주 기자] 노래가사가 삶이 된 사람들이 있다. 노년에 ‘나’를 찾고 무대 위에서 당당히 런웨이하는 이들. 뉴시니어라이프에 소속된 시니어모델이다.

시니어 모델들이 워킹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이윤주 기자

교육열이 가장 뜨겁다는 강남 대치동 한 편에는 배움을 위해 땀 흘리는 또 다른 무리가 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50대 이상 남녀 시니어가 모델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지하에 위치한 교육관의 문을 열자마자 홍대풍 음악이 흘러나오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그들처럼 편안하고 정겹다고 생각하면 오산. ‘도전 슈퍼모델’ 못지않은 긴장감과 기센 언니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을 고문이라고 소개하는 백발의 남성이 다가왔다.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대표의 남편이자 대부분의 행정을 담당하는 조윤호 고문이었다. 워킹연습에 시선이 팔린 기자에게 그가 질문을 던졌다.

“이들이 왜 여기에 왔을까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건강을 위해서,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등 때문이라고 했다. 워킹은 육체를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뉴시니어라이프 교육관에서 모델들이 포즈를 연습하고 있다. 사진: 이윤주 기자

“노인의 대부분은 더 이상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우울증에 빠집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스스로가 여자로 보이려고 자각해야 합니다. 예쁘게 걷고 자세도 바르게 하면서요. 그렇게 마음이 열리면서 노인성 우울증이 치료되죠.” 실제로 교육장은 발레교습소를 떠올리게 하듯 사방이 온통 거울이었다.

그때 곱게 옷을 차려입은 구하주 대표(71세)가 등장했다. 기자에게 우아하게 악수를 청한 뒤 조용한 인터뷰를 위해 자신의 작업실로 이끌었다. 문을 닫으니 시끌시끌했던 음악이 잠잠해졌다.

“항상 이렇게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으시나 봐요?” 기자의 물음에 구 대표는 모델은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 콘티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귀로 음악을 듣고 콘티를 생각하면서 기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운동보다 노인들에겐 더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

“사람들은 보통 걸음걸이에 대해선 상식이 없잖아요. 잘 걷는 게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몰라요. 그렇게 습관이 되니까 자신의 걸음걸이에 맞게 몸의 기능이 무너지죠.” 구 대표는 신입생이 찾아오면 그들을 벽에 세우고 어깨를 잡아본다. 50세 이상이면 그 중 절반은 한쪽이 조금 틀어지거나 앞으로 튀어나왔다고. 나이가 들면서 바지 한 쪽이 길어지거나 스커트가 한쪽으로 쏠리는 이유다.

이처럼 대한민국에는 체형의 불균형, 골다공증, 인공관절 등 여러 건강적인 어려움과 남편과의 사별, 갱년기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들을 지닌 시니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연습시켜 패션쇼에 나가기까지의 뉴시니어라이프의 영화 같은 스토리가 시작됐다.

디자이너에서 실버사업가 되기까지

디자이너였던 구 대표가 실버산업을 공부하게 된 것은 국내 패션업계의 변화 때문이다. IMF가 닥치고 기성복이 등장하면서 의상에 대한 고객들의 흥미가 줄었다. 구 대표는 자신에게 맞는 옷을 맞춰가는 즐거움이 시들해져가는 것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꼈다.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대표. 사진: 이윤주 기자

“디자이너로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보다 내 옷을 입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는데,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으니 과감하게 그만뒀죠.”

그 이후로 지인의 추천으로 실버산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구 대표의 나이는 55세였다. 노인에 대해 공부하던 구 대표는 멋 내는 세상에서 30년간 살다가 자신이 모르는 또다른 방대한 세계를 보게 된다. 3년간 100개 이상의 복지시설을 투어하고 공부하며 더 나아가 실버산업포럼 초대회장으로 첫 발을 딛었다.

“당시 고령화 시대가 문 앞에 왔는데 우리나라는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산아정책도 남아있는 그런 사회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고령화 사회를 맞게 됐죠.”

비교적 고령화 준비가 잘 된 스웨덴, 덴마크 등 선진국을 예로 공부했던 그녀의 눈에 비친 건 시니어를 위한 질 좋은 제품들이었다. 국내에도 보급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시니어 제품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팍 망했죠. 그분들이 쓰는 좋은 신발을 들여왔는데, 1만원짜리도 편한데 왜 10만원짜리를 신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구 대표가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국내외 시설의 차이였다. 당시 실버포럼산업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회원들과 요양원을 투어하는 시간을 가졌던 그는 외국과 국내 시설을 천국과 지옥에 비유했다. 그들이 사용했던 침구, 옷들이 너무 좋았던 반면 국내는 냄새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기가 막혔죠. 사람이 50~60년 동안 사회에, 가정에 봉사하고 ‘나’는 없이 살았잖아요. 자녀와 남편을 위해서요. 나이 들어 병원에 있더라도 대접받아야 하는 존재들인데, 싸고 냄새나는 곳에 누워 있는 게 화났어요.” 그래서 그녀는 새로운 개혁을 고민했다. 자신의 분야를 살려 최고의 원단으로 병원복, 잠옷, 케어복을 디자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실패였다. 병원이나 시설에서 환자에게 고가의 의복을 입히는 순간 적자가 난다는 당연한 사실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나 국가 정책적으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너무 빨리 시작한 사업이었다. “요즘 방송을 보면 내가 당시에 디자인했던 환자복이 나오더라고요. 비싸서 못한다고 샘플만 보냈는데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지 적용하더라고. 10년은 빨랐던 거예요.”

연이어 쓴잔을 맛본 후 구 대표는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시장조사 없이 나 혼자 나의 세계를 만들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자신이 경험했던 한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디자이너지만 최초로 무대 위에 올라갔던 적이 있어요. 구두 수입회사에서 큰 쇼를 하는데 내 옷을 입고 직접 무대에 서보라는 거예요. 그 때의 특별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많은 관중 앞에서 모습을 보이고, 그들에게 느껴지는 특별한 반응. 그때 그 감동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어요. 패션쇼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죠.”

시니어모델과 시니어패션의 멋과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클래식 패션쇼'. 뉴시니어라이프 제공

노인을 위한 ‘문화’는 있다

과거를 회상하던 구 대표는 노인심리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그들의 심리를 설명했다. “난 70대, 80대니까 아픈 건 당연해라고 생각하고 참게 돼요. 사실 아픈 건 20대도 똑같잖아요. 젊어서 치유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을 뿐이지. 하지만 노인들은 병원과 약에 의존하게 되죠.”

구 대표는 노인들이 지불하는 병원비, 약값 등 대신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게끔 ‘예방’의 방법을 고민했고, 그 결과 노인을 위한 문화프로그램 즉 패션쇼를 떠올렸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일 뿐 아니라 의상이 사람에게 주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옷을 입고 싶어 하면 건강한 거예요. 입고 가서 자랑할 장소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점점 뒤로 물러서고 내 모습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그러다보면 앞에 나서는 게 겁나고 점점 소외돼요. 그렇게 우울증이 찾아오죠.”

반대로 옷을 입고 ‘내가 좀 괜찮네?’라고 느낄 때는 자신감을 얻고, 그것이 곧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의상이다. 이에 구 대표는 최초로 시니어 패션쇼를 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대한노인회를 통해 모델모집공고문을 냈다. 30명의 모델을 뽑는 데 지원한 이들은 280명. 예상보다 많이 모인 숫자에 놀란 구 대표는 심사위원을 하면서 또 한 번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됐다.

그는 당시 광경을 어린아이들의 재롱잔치에 비유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걸어오는데, 뭔가 할 게 없으니 자기 마음속에 있는 온갖 짓을 다 하는 거예요. 어린아이처럼. (웃음) 그 모습이 눈물이 나면서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감동도 있고 귀엽기도 하고…. 그때 생각했지요. 이분들을 어떡하지. 저 속에 저렇게 많은 열정이 있고, 꿈도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자기만의 색이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고 그러다가 죽을 텐데….”

고민 속에서 탄생한 실버패션쇼 프로그램은 2007년, 지금의 사회적기업 ‘뉴시니어라이프’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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