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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을 둘러싼 소모적 알력

[기자토크] 대통령 지지자들에 매 맞는 진보매체들…‘소통의 봄’에 그림자 드리울라

기사승인 2017.05.17  20:42:18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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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서영길 기자] 글을 쓰기까지 꽤 망설였다. 남의 집 싸움에 훈수 뒀다가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봐. 하지만 며칠 새 온라인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모적 알력을 보면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소통의 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충천해 있다.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문재인 미담’이 봇물을 이룬다. 임기 내내 불통 논란이 일었던 전 정부와는 대조를 보이는 문 대통령의 소통 행보와 탈권위적인 모습들이 합쳐지며 나온 결과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경내를 걸으며 신임 민정·인사·홍보수석비서관, 총무비서관 등과 대화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문 대통령을 둘러싸고 난 데 없는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문 대통령의 열성적 지지자들과 이른바 진보언론 간의 불편한 관계다.

대통령을 향한 일부 지지자들의 ‘팬덤화’는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상대가 틀렸다고 판단되는 순간, 가차 없이 집단행동에 들어가며 한 마디로 탈탈 털어버리기 때문이다. 소통을 최고의 가치로 내걸며 갓 출항한 문재인호에 되레 생채기를 내진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들 정도다. 

발단은 지난 12일, 경향신문이 문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를 보도한 기사를 공식 SNS에 올리면서다. 경향 측이 ‘밥도 혼자 퍼서 먹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몇몇 누리꾼이 “대통령이 만만하냐” “무례하다” 등의 댓글을 달며 논란에 불을 댕겼다. 이같은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며 문제가 커졌다.

이틀 뒤인 14일, 이번엔 오마이뉴스가 타깃이 됐다. 문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에게 ‘씨’라는 표현을 쓴 것이 도마 위에 오른 것. 영부인에 대한 예의 없음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에 오마이뉴스 한 기자가 씨라고 표기한 이유를 장문의 글로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회사 차원에서 머리를 숙여야 했다.

온라인상의 집단 움직임은 이른바 ‘문빠’ 이슈로 더욱 거세졌다. 지난 15일 한겨레신문의 한 기자가 개인 SNS에 문재인 팬덤을 가리켜 ‘문빠’라는 표현을 써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 공분을 샀다. 

해당 기자는 “한겨레21의 표지 사진이 권위적이라 맘에 안 든다”며 일부 누리꾼들이 악플을 단 것을 놓고 “우리가 살아낸 지난 시절을 온통 똥칠하겠다고 달려드니 어쩔 수 없이 대응해줄게. 덤벼라 문빠들”이라는 코멘트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그 직후 해당 기자를 향해 온갖 욕설과 협박 등의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기자 개인에 이어 회사도 공식적으로 용서를 구했다. 

이튿날 미디어오늘의 한 기자는 이같은 집단적 움직임에 대해 “개떼처럼 몰려가 일점사해서 굴복시키는 시대면 언론이 왜 필요한가. 그거 당신들 주인에게 부끄러운 짓이오”라는 글을 개인 SNS에 올렸다가 또 하나의 표적이 됐다. 당사자 뿐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공개 사과했음은 불문가지다.  

한겨레신문이 16일 게재한 사과문,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뉴스가 17일 게시한 사과문.

여기까지가 최근 며칠 새 벌어진 일이다. 일련의 사건을 보면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이 벼르고 있었다는 듯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기사나 기자 개인의 글을 찾아내 서운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국내 대표 진보매체들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분위기다. 잘못을 사과해도 사과가 아니라며 몽니를 부린다. 심지어 “한경오는 가난한 조중동, 몽둥이가 답이다” “기레기 개노답 3형제” 등의 격앙된 표현을 써가며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속된 말로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언론이 자신들의 기준에서 실망스런 보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낙담했을 수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언론과 벌인 싸움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는 걱정의 발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선의’가 어떻든 집단의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시도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선 기간 중 다른 후보 지지자들에 대한 비방을 서슴지 않아 ‘양념부대’로 불린 이들이 당시 문 후보를 얼마나 곤경에 빠뜨렸는지 상기하면 ‘과잉 충정’이 어떤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빠’들이 지켜내야 할 성역의 존재가 아니다. 새 정부의 기치로 내세운 소통을 통해 그동안 쌓여있던 세대 간, 지역 간, 정파 간의 적폐를 걷어내고 통합의 숙제를 안고 있는 모두의 대통령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이 지난 2012년 18대 대선때 올린 트위터 글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문재인 후보의 당선 시 제안”이라며 “지나친 환호성은 모두 그를 찌르는 부메랑이다. 침묵이 좋은 밤”이라고 했다. 실제 경청을 전제로 한 침묵은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일 때가 많다.

문재인호가 닻을 올린 지 10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소통의 봄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어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하는 열정들 사이사이 냉정이 자리해야 할 때다.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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