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 패러다임 전환, 지금이 적기다
대관 패러다임 전환, 지금이 적기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7.04.2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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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뒤 전관로비 양지로 끌어내야…인식 개선이 우선

김영란법으로 위축된 대관업계에 최순실 사태가 덮쳤다. 급기야 삼성은 대관조직 해체를 선언했다. 재계 대관 담당자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당장 5월 선거를 앞두고 안테나 세울 시기에 발만 동동거린다. 오해를 살까봐 민관 접촉도 조심스럽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로비를 합법화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대관의 딜레마
패러다임 전환, 지금이 적기 
③한국형 로비법과 PR산업

[더피알=박형재 기자] 국내 기업의 대관업무가 대부분 음성적으로 진행되는 데 비해, 해외 기업들은 로비스트법을 활용해 합법적으로 진행한다. 재계에서는 김영란법과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로비 합법화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독일, 캐나다 등 해외에선 기업이 로비스트를 고용해 의회나 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한다. 미국은 1946년 최초의 로비규제 법률인 ‘연방로비규제법’을 제정한 데 이어 1995년에는 로비 관련 모든 법률을 포괄하는 ‘로비명세법(LDA)’을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이익단체들이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기도 한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오른쪽)의 안내를 받으며 국회의사당을 둘러보는 모습. ap/뉴시스

미국의 로비법은 투명한 공개와 감시가 핵심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 단체가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해 입법로비와 정치자금 확보를 하는 것을 용인한다. 

대신 로비스트와 이들을 고용한 기업 등은 고객과 보수, 로비활동 내역 등을 오픈해야 한다. 로비스트들은 최초로 로비한 날로부터 45일 이내에 의회 사무처에 보수내역을 포함한 로비활동 보고서를 분기별로 제출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된다.

구체적으로 △6개월간 5000달러 이상 받은 로비스트, 2만 달러 이상 수임한 로비회사는 반드시 상하원 사무국에 등록하며 △등록시에는 이름과 주소, 고용주의 정보,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인지, 고용기간과 보수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또한 구체적인 로비 목적과 활동내용 △어떠한 법률에 찬성 또는 반대하였는지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현재 미국 의회에 등록된 로비스트는 약 10만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로비 합법화의 최대 장점은 입법자에게 대중의 반응을 전달하고, 입법과정에서 이해관계를 정확히 파악해 정책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커튼 뒤에서 이뤄지는 전관로비를 막을 대안이 없는 가운데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 적절히 감시·견제할 수 있다. ▷관련기사: 로비 합법화의 필요충분조건 

반면 로비스트를 제도화할 경우 돈 많은 집단이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어 권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반론도 존재한다. 로비를 합법화하면 음성적 로비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것이며, 은밀한 봐주기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로비 합법화’ 탄력 받을까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이는 ‘베갯머리 송사’와 같은 의미다. 사전은 ‘잠자리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바를 속살거리며 청하는 일’이라고 정의내리고 있으니 고전판 로비라 할 수 있다. 과거든 현재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결정권자에게 청원하는 것이 로비의 본질이다.

김진원은 ‘로비&로비스트’에서 위와 같이 로비를 정의하고 있다. 최종 선택은 결정권자에게 맡기고 바라는 바를 허심탄회하게 말할 기회는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로비는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신문에서 부정부패나 뇌물수수 같은 ‘검은 거래’를 말할 때 함께 쓰면서 나쁜 이미지가 굳어졌다. 로비의 본래 의미는 ‘소통’에 가깝다. 될 일은 되게 하고, 안될 일은 막기 위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잘못된 로비의 개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로비를 어떻게 양지로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20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논의가 있었고, 2000년 5월에는 참여연대가 토론회를 열어 로비활동 관련 법률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후 논의가 진전되면서 2005년과 2006년 ‘로비스트 등록 및 활동공개 관련법’이 각각 발의됐다. 변호사업계 반발로 결과물을 얻지 못했지만 합법화에 대한 화두는 충분히 던져놓은 상태다.

법제화에 실패한 한국형 로비법은 공통적으로 ‘정책결정과정에서 참여기회 확대와 정보의 소통을 위해’ 로비스트 합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해관계자의 합리적·논리적 참여를 높이고 불법·음성적 거래를 방지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로비스트의 공개 및 등록 △로비활동 내용 공개 △로비활동 규제 및 가이드라인 설정 △불법적 로비활동의 처벌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로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뛰어넘은 대정부관계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

로비 합법화의 최대 걸림돌은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이다. 관련 논의가 중단된 배경에는 로비와 로비스트에 대한 비판적 사회 인식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는 정당한 로비와 불법 브로커를 착각한 결과다. 합법적 로비스트는 오히려 브로커나 전관 등이 활동할 여지를 줄여준다.

또한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부정부패는 근절해야 하지만, 로비의 양성화는 힘 있는 자들의 갑질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언론에서 부당거래와 로비를 동일시한 결과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로비는 이미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여의도 국회 주변에는 수백명의 대관업무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지자체 서울사무소의 주 업무는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고 유리한 규정을 만들기 위해 청원하는 것이다.

로비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세 번째 이유로는 법조인들의 ‘밥그릇 지키기’가 꼽힌다. 현재 규정에 의하면 변호사만이 의뢰인을 대신해 청원 사항을 관계기관에 부탁할 수 있다. 따라서 법조인 출신이 다수인 국회 상임위 의원들이 찬성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바람직한 대정부관계 활동을 위한 로비스트 관련법’ 논문을 쓴 박종민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로비를 자꾸 부정적 의미로 보는데, 수많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그걸 점검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관련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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