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는 PR발전에 촉매제…PR이 나아갈 방향은 ‘Global’~”
“소셜미디어는 PR발전에 촉매제…PR이 나아갈 방향은 ‘Global’~”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1.01.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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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 前 한림대 교수] 국내 최초 PR史 '한국 PR의 역사, 1392~2010' 저술

대한민국의 PR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PR 역사서’가 출간돼 PR학계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인섭ㆍ이명천ㆍ김찬석 3인의 교수가 함께 저술한 ‘한국 PR의 역사, 1392~2010’이 바로 그것. 이 책은 제목에서 보듯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 국내 PR의 발전 과정을 총정리하며 미래 PR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다. 책의 출간을 주도한 원로 홍보학자 신인섭 전 한림대 교수(82)를 만나 국내 최초 PR 역사서가 갖는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우선 ‘한국 PR의 역사, 1392~2010’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듯 한국 PR의 역사에 관한 책입니다. 국내에 PR이란 용어가 소개된 지도 60여년이 지났는데, 아직 이렇다 할 PR 역사책 하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공동 집필을 하게 됐습니다. 책은 국내 PR의 발전 과정을 시대별로 구분, 도입기-배아기-형성기-발전기-성숙기로 나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정상 정부의 PR 기구, 홍보 정책, 언론매체 상황 등도 충분히 녹아냈고요. 이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변화와 PR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국내 최초 PR 역사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른데요.

“사실 사(史)자 들어가면 참 인기가 없습니다(웃음). 일반적으로 지루하다는 인식 때문이지요. 하지만 역사를 모르고서는 현재를 알 수 없고, 또 오늘을 모르고서는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사명감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오로지 한국 PR의 발전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는 바람뿐이었습니다. PR의 첫 역사서이니만큼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바람직한 PR을 위한 건설적 비판, 이슈화 자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 출간으로 PR이 본격 논의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간 한국 PR史에 대한 서적이 전무했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PR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죠. 국내에서 PR이 본격화된 시기는 불과 20여년 남짓합니다. 학문 분야에서도 1988년 이후 본격적으로 광고·홍보 관련 학과가 생겨났을 정도니까요. 물론 1974년 중앙대가 국내 최초 ‘광보학과’를 개설하긴 했지만, 독립적 영역으로서의 PR학과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결국 서구에 비해 PR이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인식과 연구가 한참 늦었기에 국내 PR 관련 연구가 더디게 진행됐고, 그 결과 국내 PR 역사서도 나오기 어려웠다고 생각됩니다.”

60여년 전에 PR이란 용어가 소개됐다고 하셨는데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PR이라는 용어는 美군정 시절인 1945~48년 국내에 첫 소개됐습니다. 당시 문서인 ‘주한 미육군 2군단 정보처 역사과, 1945~48년 기간 주한 미 육군 군정청과 미국-소련 간의 한국 내에서 관계와 한국의 정치 문제에 대한 RG 332’라는 긴 제목의 자료에서 ‘Public Relations, Relations with Koreans, the Office of Civil Information’이라는 제목이 나온 것이죠. ‘Office of Civil Information’은 민간공보처라고 할 수 있는데요, 군정청의 PR업무를 비롯해 한국 과도기정부 공보부처 자문역할을 한 기구입니다. 이를 근거로 60여년 전으로 산출한 것입니다. 보충설명을 하자면 PR(Public Relations)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된 것은 이에 앞선 1960년대부터입니다. 조선일보 키워드 검색을 통해 살펴보면, 50년대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던 PR이란 용어가 60년대부터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시기엔 PR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홍보와 공보, 선전 등의 용어와 혼용됐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PR이 본격화된 시기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PR이 표현의 자유가 전제돼야 하는 것으로 볼 때, 현대적 PR의 태동기는 1988년~98년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군사정권 이후인 이 시기는 표현의 자유화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분출했고, 또 실현되기 시작한 때입니다. 실제 1987년 6·29 선언과 언론기본법 폐지에 따라 일간지를 비롯한 정기간행물 수가 폭증했습니다. SBS로 대표되는 민영방송과 지방 대도시 TV 방송국 등이 잇달아 개국하면서 방송 매체도 크게 늘어났고요. 여기에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등의 국가적 행사 역시 표현의 자유화에 크게 한몫했습니다. 덕분에 90년대 들어 국내 PR기업 숫자가 급증하는 등 현대적 PR시대를 맞게 됐습니다. 이같은 대내외적인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본격적인 PR 시대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PR의 전제가 되는 표현의 자유, 이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매체 수, PR 활성화의 가시적 지표가 되는 PR회사 등의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88년 이후 PR의 본격화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PR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2000년대 이후 국내 PR업계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꾸준히 발전하고 있습니다만, 몇몇 대형 PR사를 제외하곤 독립 PR사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대기업 인하우스 광고사들의 PR 대행에 있습니다. 국내 기업의 경우, PR을 전문 PR 컨설턴트에 의뢰하기보다 광고사 PR 파트에 맡기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그만큼 PR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와 함께 PR업계 자체도 산업으로서의 신뢰도 구축에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됩니다. 광고회사와 달리 현재 PR회사는 정기적인 수입 내역을 공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PR기업협회 회원사만이라도 수입 관련 자료를 공식적이고 정기적으로 발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PR이 산업으로서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가 각광받으면서 PR의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시각도 지배적인데요.

“그렇습니다. 소셜미디어는 PR의 엄청난 도구이자, PR산업 발전의 촉매제로도 크게 역할 할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소셜미디어 관련 비즈니스가 점차 전문 PR 컨설턴트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PR산업이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이 무수히 많은 온라인 채널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코 내부의 인력만으론 전부를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전문 PR컨설턴트의 손을 빌려 해결하는 상황이 많아질 것입니다. 자연스레 PR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지게 될 것입니다.”

국내 PR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먼저 PR 컨설턴트들의 능력 자체를 배양해야 하며, 두 번째로 PR인들의 인식변화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괜찮은 물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고 활용하는 손님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PR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이들에 PR의 역할을 맡기는 구조가 조성돼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후배 PR인들에게 당부의 한 말씀 해주신다면.

“‘글로벌 하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삼성, LG, 현대기아차 등은 더이상 국내 기업이 아닙니다. 해외 무대를 밟고 활약하는 글로벌 회사들입니다. 때문에 국내 PR 못지않게, 아니 그 보다 훨씬 해외 시장 PR에 역량을 쏟는 실정입니다. PR도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한 싸움이 아닙니까. 그렇다 치면 우선 돈이 되는 시장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결국 해답은 더 큰 시장, 글로벌에 있다는 사실이 자명하고요. 국내 PR 회사들의 향후 나아갈 방향이 글로벌에 있는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춘 PR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PR의 역사, 1392~2010]

최초의 국내 PR 역사서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PR의 역사를 정리했다. PR이란 개념이 언제부터 보편화됐는지, 이전에는 어떤 형태로 PR 기능이 존재했는지, 또 PR이 산업으로서 자리 잡은 시기는 언제인지 시대별로 흐름을 잡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신문 및 월간지, 사전, 정치 문서 등 다양한 자료를 제시해 객관성과 신뢰도를 높였다.

정부의 PR기구, 홍보정책, 언론매체 상황이 시대별로 바뀌어 온 과정을 상세히 소개, 국내 사정과 PR이 어떤 관계로 얽혀 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미국 PR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해 해방 이후 PR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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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 교수는


한국 PR계 산증인…
광고의 글로벌화 초석 놓아



한국 광고홍보계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평양교원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현대경제일보·일요신문 광고부장(1965), 희성산업(현 HS애드) 이사(1978), 나라기획 회장(1982), 한국ABC협회 초대 전무이사(1989), 한림대학 객원교수(1998) 등을 지냈다. 10여년간 후학 양성을 위해 힘쓰다 지난 2009년 3월 한림대에서 퇴임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부장관 공로표창, 한국광고인상, 한국방송광고공사 특별상, 국민포장 중앙언론문화상, 제2회 광고인협회 AIA 유공광고인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PR의 역사」(공저, 2010) 「한국의 국제광고사」(2004) 「국제광고와 PR」(공저, 2003) 「한국화장문화사」(2002) 「신문광고 개선 방안」(2001) 「박카스 40년, 그 신화와 광고 이야기」(2001) 「일본의 광고:그 과거와 현재」(1993) 「중국의 광고」(1991 개정판, 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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