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민심 앞 KBS-MBC, 세월호 데자뷰
촛불민심 앞 KBS-MBC, 세월호 데자뷰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6.12.0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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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2년만에 되풀이 된 공영방송 기자들의 자성, ‘이대로는 안된다’

“광화문 집회 6꼭지...그리고 우리는 금 투자에 사람이 몰리고 북한 사람들이 한국산 난방용품을 산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네. 그 뉴스를 제가 진행했습니다. 부끄러운 게 아니라 쪽팔려서 뉴스센터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내내 눈물이 줄줄 났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애먼 진행 스탭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습니다.”

[더피알=문용필 기자] 1일자 자사 노보에 올라온 어느 MBC 기자의 고백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노보에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보도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가하면 자사 뉴스를 강하게 비판하는 시청자 의견을 줄줄이 올리기도 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를 내는 기자도 있었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들의 사임 소식이 들려왔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박상권 기자와 이정민 아나운서가 앵커 자리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임영서 주말뉴스 부장도 보직 사의 의사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가 발행한 1일자 노보. 노조 홈페이지

KBS 구성원들은 오는 8일부터 총파업에 나선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1일 발행한 노보에 따르면 KBS 양대 노동조합원 3782명 중 2995명이 투표에 나서 85.5%가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렇게 양대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행동 개시’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상황에서 민심에 부합하지 못한 보도행태를 보인 데 대한 자성으로 볼 수 있다.

JTBC와 TV조선 등 종편방송들이 연일 특종들을 빵빵 터뜨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작 공영방송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언론계 안팎의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특종은 고사하고 ‘있는 팩트’ 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질타가 쏟아진다.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신뢰도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촛불집회 취재차 나간 MBC 기자는 성난 군중의 항의와 조롱에 떠밀려 쫓겨나야 했다. 급기야 마이크에서 자사로고를 뗀 채 리포트에 나서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KBS 중계차량에는 ‘하야하라’는 스티커와 ‘니들도 공범’이라는 낙서가 나붙었다.

반면, JTBC의 중계차와 기자들은 개선장군 취급을 받았다. 촛불시민들로부터 “JTBC 파이팅” “JTBC 잘한다” 등의 응원을 받으며 취재현장을 누볐다. 짐작컨대 이를 바라보는 KBS, MBC 기자들로서는 ‘내가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라는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신은 시청률 집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지난달 21일 3.9%(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추락했다. 이날 JTBC ‘뉴스룸’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인 장면이다. 종편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지상파 방송사의 자존심이 처참히 구겨진 셈이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우리는 2년 전에도 목격한 적이 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문제점으로 제기됐던 언론들의 부적절한 보도행태가 그것이다. 실종된 자식을 찾는 부모들의 애끓는 심정은 아랑곳없었다. 속보경쟁으로 인한 오보와 그리고 사고의 본질을 호도할법한 뉴스들이 난무했다. ‘기레기’라는 말은 2014년을 상징하는 신조어 중 하나가 됐다.

재난방송과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 해야 할 KBS와 MBC 역시 비난의 중심에 섰다. 일례로 MBC는 참사 당일 수학여행 단체여행자 보험의 보상내역을 전하는 리포트로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다. KBS는 뉴스특보에서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자극적인 자막을 띄웠다. 심지어 축소보도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터진 것도 현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KBS는 당시 보도국 막내기수 기자 10명이 사내 보도정보 시스템에 양심 고백 성격의 글을 게재했고 보도본부 소속 부장들이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보직을 사퇴했다. MBC 기자회는 성명을 내고 “MBC는 왜 취재기자들의 말을 믿지 않고 ‘받아쓰기 방송’이 된 것일까요?”라며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에게 사죄했다. ▷관련기사: “대한민국 언론계, ‘선도 언론’이 사라졌다”

하지만 처절한 내부반성이 뒤따랐음에도 현재까지도, KBS와 MBC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기만 하다. 2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당시 제기됐던 여론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사 보도의 문제점을 충분히 개선할만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공영방송은 진실과 권력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는 평가다.

반면, JTBC는 2년 만에 가장 신뢰받는 언론으로 자리잡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학생과의 인터뷰에서 부적절한 질문으로 질타를 받았지만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의 즉각적인 사과와 ‘팽목항 현지 진행’ 등 진정성 있는 행보가 뒤따랐다.

이는 자사 뉴스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JTBC는 쟁쟁한 지상파 방송사를 제치며 뉴스 신뢰도를 높여갔다. 수면 아래 가라 앉아있던 국정농단 행태를 표면에 끌어올린 것도 JTBC 단독보도의 힘이 컸다.

▲ 지난 2014년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항의하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 뉴시스

물론, 공영방송이라는 구조상 KBS와 MBC 모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이란 말 속에는 공공을 위한 언론의 책임이 뒤따른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게다가 KBS는 국민의 수신료를 받고 있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고 정확한 취재와 보도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2년 만에 되풀이된 KBS와 MBC 구성원들의 자성과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경영진과 보도책임자들도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안 그래도 미디어업계 전반에서 지상파의 영향력은 해가 다르게 감소하고 있다. 이번에도 공정보도를 위한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면 공영방송 기자들이 ‘기레기’ 오명을 벗을 기회는 당분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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