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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사과’ 낳은 옐로저널리즘의 유혹

반복되는 선정적 보도...자정 노력+제재 강화로 실질적 해결책 모색해야

기사승인 2016.06.07  18:43:36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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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문용필 기자]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인 ‘옐로저널리즘’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한 매체가 성폭행 사건을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헤드라인을 뽑아 물의를 일으키면서다. 이에 옐로저널리즘 행태를 개별 언론의 자정에 맡기기 보다 강력한 제재로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달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3일 기사화했다. 학부형 등 3명이 초등학교 여교사를 윤간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회적 파장이 큰 만큼 이 신문뿐만 아니라 다수의 언론이 앞다퉈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문제는 <헤럴드경제>가 만든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속 3명의 정액...학부형이 집단강간’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 사건의 본질과는 별 관계없는 자극적이고 성적인 표현들이 사용돼 자칫 피해자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 지난 4일 <헤럴드경제> 사옥 앞 항의시위에 등장한 피켓. 출처='강남역 10번출구' 페이스북

이와 관련,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이런 형태의 제목은 헤드라인 작성의 ABC도 모르는 것이다. 선정성의 막장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언론이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고 질타했다.

김 교수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시각적 선정성보다 언어적 선정성이 기억에 남는 잔상효과가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난다”며 “이같은 언어적 선정성은 언론들이 반드시 조심해야 할 대목”이라고도 말했다.

실제 문제의 기사는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네티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헤럴드경제> 사옥과 언론중재위원회 앞에서 해당 보도를 규탄하는 1인 시위까지 벌어졌다. 결국 <헤럴드경제>는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4일 자사 웹사이트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헤럴드경제>는 사과문에서 “피해자의 인권 등을 고려하지 못한 선정적이고 저급한 제목을 달아 사건 관련 피해자들은 물론 독자들과 국민들을 불쾌하게, 또 분노케 만들었다”며 “정말 죄송하다. 부적절하고 잘못된 제목과 내용을 보도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언론매체로서 이같은 잘못을 저지른 데 대해서는 그 어떤 변명도 충분치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며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은 물론 모든 독자들과 국민들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홍정욱 회장 역시 언론사 사주로는 이례적으로 공식 사과에 나섰다.

홍 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편집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회장이자 대주주로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머리 숙였다. 또한 “기자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성폭력 및 성 차별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심어 이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헤럴드경제>는 불과 3개월전인 지난 3월에도 부적절한 헤드라인의 기사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한 의사가 내시경을 받은 환자를 성추행 한 혐의로 구속되자 ‘檢, 대장내시경女 성추행 혐의로 의사구속‘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것. 피해자 여성을 ’OO녀‘ 같은 부적절한 호칭으로 표현함으로서 ’성추행‘이라는 사건의 본질이 희석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만한 대목이었다.

트래픽 경쟁서 비롯되는 무리수 보도

누군가는 비탄이나 큰 충격에 빠질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해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는 사례는 비단 <헤럴드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수의 언론이 클릭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고 있다. 

지난달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충격에 못이겨 비틀대는 CCTV 영상이 종편언론들에 의해 여과없이 공개됐으며(관련기사: 알권리란 이름의 ‘영혼 없는’ 보도, 그 끝은?) 지난해 12월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신인급 여배우의 모습을 비키니 화보 소재로 기사화한(관련기사: 여배우 죽음을 ‘비키니’로 기록한 언론들) 일부 인터넷언론들도 도마 위에 오르내린 바 있다. 

이같은 옐로저널리즘 행태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것은 언론사들의 무리한 트래픽 경쟁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결국 포털사이트를 통한 트래픽 중심의 뉴스소비 구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외부적 압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매체들 중) 누가 돌을 맞느냐의 문제일 뿐 결국은 누군가는 맞게 돼있다”며 “트래픽 중심의 매체 생존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올 초 출범한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이하 평가위)는 이같은 선정적 보도를 막기 위한 장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뉴스 제재 심사를 담당하고 있는 제 2소위 위원장이기도 한 김병희 교수는 “(평가위에서도) 선정성은 규제 대상”이라며 “언론의 선정성을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평가위의 뉴스제휴 및 제재 심사규정에는 신규 제휴 신청 매체의 심사과정에서 선정성을 중요 평가항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범죄와 재난 보도 과정에서 관련된 피해자 및 당사자의 감정이나 피해가능성의 배려여부가 여기에 해당된다. 상업적 목적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과도하게 보도하거나 강조하는 측면도 평가요소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지난 1월) 평가기준 발표 이후 등장한 신종 어뷰징이나 선정성 문제가 담긴 사례들을 수집하는 중”이라며 “이를 보완해 평가기준 발표시점을 기준으로 1년 내에는 수정안을 낼 생각”이라고 전했다.

다만, 평가위의 이같은 정책은 어디까지나 포털에 송고되는 기사에 한정된다. 현재 각 포털이 뉴스유통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는 하지만 모든 언론의 옐로저널리즘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각 언론유관단체에서 정한 보도준칙이 존재하기는 한다.

예를들어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권고 기준을 보면 성범죄가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라는 점,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반인권적 범죄행위라는 관점을 접근할 것 등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권고’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이 역시 옐로저널리즘의 싹을 잘라버리는 안전장치라고 볼 수는 없다.

   
▲ 지난 4일 <헤럴드경제>가 자사 웹사이트에 게재한 사과문. 해당 웹사이트 캡처

백서 등 강력한 제재 수단 필요 

때문에 일각에서는 옐로저널리즘을 뿌리 뽑기 위한 보다 강력한 제재수단이 동원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타난다. 단,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은 지양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나 공권력이 함부로 나서서 언론을 제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해답은 언론계의 ‘자체 정화’ 의지다.

이와 관련, 김성해 교수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먼저 언론 유관단체들이 참여하는 ‘언론평의회’의 출범이다.

김 교수는 “언론을 일종의 공공기업이라고 보고 이를 공적으로 관리하는 사회적 합의체제의 개념‘이라며 ”기존 언론협회들을 활용해서 (보도준칙) 가이드라인을 가다듬고 (선정적인 기사들을) 강하게 제재하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언론윤리백서’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언론사가 잘못을 하더라도 이내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선정적인 기사가) 반복된다”고 본 뒤, “언론윤리백서를 만들어 언론중재위에서 다루는 케이스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언론사의 데이터를 기록해야 한다”며 “이런 언론사는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참고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대급부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는 언론사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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