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미디어가 되레 건강 해칠라

[유현재의 Now 헬스컴] 폭력, 흡연·음주, 자살 등 일상적 접근 가능케 해

기사승인 2016.05.26  12:38:29

유현재 서강대 교수 hyunjaeyu@gmail.com

공유
default_news_ad1

[더피알=유현재] 신문방송학과 혹은 미디어 관련 학부에 입학하게 되면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들이 있다. 대표적인 과목이 커뮤니케이션 입문이나 매스컴 이론 등이다. 필자도 이번 학기에 새내기를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입문을 강의하고 있다.

이런 필수과목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핵심 테마는 매스컴과 관련된, 즉 사회구성원이 미디어를 접하면서 벌어지는 일정한 현상들을 설명(explain)하고 예측(prediction)하고 해석(interpretation)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이론들이다.

고전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 의제설정)과 제 3자 효과, 최근 유용성이 더욱 높아진 제 1자 효과와 이용/충족이론, 강효과 약효과, 피하주사 등 시대를 넘어 독자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이론들은 참 많다. 앞서 언급되지 않은 중요 이론적 배경의 하나인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 또한 새내기들을 위한 단골 주제다.

   
▲ 연구결과 폭력적인 콘텐츠를 본 아이들은 실제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스탠포드대학의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교수가 진행한 보보인형(Bobo-doll) 실험을 시청하며 초기 사회학습이론을 토의하고 비판적 시각을 교환하는 시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말로 오뚜기 실험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실험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콘텐츠를 오디언스들이 어떻게 학습, 모방하고 내재시키는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폭력물 본 아이 폭력적으로 

인구통계학적으로 유사하다고 가정되는 두 그룹의 어린이들에게 폭력적 성향의 처치물과 비교적 평화적인 상황을 노출한 다음 오뚜기가 놓인 방으로 안내를 한다. 그런 다음 이어지는 관찰에서는 앞서 조작한(manipulated) 환경에 노출된 두 그룹이 상이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 기록된다. 폭력적인 콘텐츠를 본 아이들은 오뚜기를 때리고 걷어찼지만, 반대 그룹 아이들은 오뚜기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2016년 현재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폭력물, 흡연과 음주, 중독 등 각종 건강위험행동(Health Risk Behaviors)에 대한 규제 검토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도 사회학습이론은 중요한 배경이다.

실제 사회학습이론을 비롯해 미디어가 제공하는 각종 건강위험행동이 청중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는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고 어느 정도가 합리인지, 실제적 사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특히 최근 미디어의 숫자와 콘텐츠의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해지면서 이같은 이슈에 대한 논의는 더욱 복잡한 양상이 되고 있다.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시각을 견지하는 주체들은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각종 건강위험행동의 미디어 노출에 대해 더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연구 결과 폭력적인 콘텐츠를 본 아이들은 실제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사진은 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 한 장면.

반대편에선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건강위험행동과 오디언스의 건강상태 사이에 명확하게 배타적인(exclusive) 원인과 결과 관계가 있는지 묻는다. 만약 과학적·통계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사항이라면 도대체 왜 숭고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는가라는 주장이 되겠다.

사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건강위험행동 관련 미디어 콘텐츠를 관리하는 합리적이고 일관된 원칙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상당수 규정들이 모호하거나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될 만한 여지가 있다.

피우지 못할 담배 손에 들고

흡연, 자살, 음주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일정한 시간대에 일부 품목에 대한 영상 광고가 제한되고 있다. 주류가 그렇고 비만의 폐해가 공론화되면서 패스트푸드도 자유롭지 않다.

담배에 대한 홍보활동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규제 수위가 높다. 건강에 대한 해악이 음주나 패스트푸드 섭취 등에 비해 훨씬 명확한 흡연은 TV는 물론 그 외 주요 미디어에서도 프로모션 활동에 제한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유형의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흡연이라는 건강위험행동을 스리슬쩍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너무나 잘 조성돼 있다.

국내에서 개봉되는 영화들만 해도 실로 다양한 흡연 장면이 등장한다. 흥행 실적이 좋은 영화를 보면 꽤나 많은 흡연 장면이 마치 기본 과목처럼 삽입돼 있다.

   
▲ 규제를 받는 드라마와 달리 영화 속에는 수많은 흡연장면이 등장한다. 사진은 미생 장면 중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입에 물고만 있는 장면.

물론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관객 연령을 기준으로 관람의 가부가 결정되는 콘텐츠며, 수용자가 주체적으로 선택해 노출되는 방식이기에 공중파와 동일한 잣대를 대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청소년이 관람할 수 없는 영화로 구분되는 시스템이 있는 만큼 무리한 규제 마련이 합리적인가 반문도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의 미디어 환경은 예전처럼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서만 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기에 규제 방식은 더욱 현실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때로 드라마상에서의 흡연은 웃지 못 할 상황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케이블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이 자유롭게 담배를 들고 있지만 결코 불은 붙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규제사항을 모면하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둔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자살에 대한 드라마틱한 묘사

또 하나의 건강위험행동 장면, 자살은 어떨까? 자살 관련 언론보도의 심각성은 여러 차례 언급했기에 차치하더라도 드라마 등에서의 자살 장면도 이미 적절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 드라마 등에서의 자살 장면은 빈번하다. '딴따라'의 한 장면

웬만큼 시청률이 확보된 유명 작품의 경우, 막장과 비 막장 드라마를 막론하고 주인공이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극복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자살 관련 상황이 어김없이 묘사된다. 답답한 상황을 해결 또는 회피하려는 목적에서 자살을 활용한다.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살을 감행하는가하면, 이래저래 괴로운 나머지 안식을 찾기 위해 자살한다는 스토리도 있다.

자살에 대한 드라마틱한 연출과 빈번한 묘사는 성인은 물론 상대적으로 분별력과 성숙도가 낮다고 가정되는 청소년층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체로 자살기도를 하는 주인공들은 비장한 음악과 표정으로 포장돼 자살과 죽음이 미화되기까지 한다. ‘극 전개상 필요하다’는 말은 일견 합리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우리사회가 무려 13년 동안 자살률 세계 최고라는 비정상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성립되지 않는 논리다.

마지막으로 음주와 관련된 사항은 개인적으로 가장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그 해악성이 흡연이나 자살처럼모든 이가 쉽게 공감할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주 장면의 미디어 노출은 무엇보다 사회구성원의 공감대 형성과 원칙 준수 등이 중요하리라 본다.

극중에서 다양한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유일무이한 해결책으로 음주만을 과도하게 묘사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음주 혹은 주사 등을 가벼운 호기나 패기로 치부하는 장면들도 경계돼야 할 영역이다. 주량의 맹목적 자랑과 상하관계에 대한 윤활유로써 음주를 빈번하게 묘사하는 것도 중요한 공공재인 미디어 콘텐츠에선 운영의 묘가 필요한 부분이다. 

건강은 개인 차원에만 국한될 수 없다.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건강위험 요소에 대한 논의도 ‘나는 괜찮은데’라는 차원의 사안이 아님에 분명하다. 거시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 hyunjaeyu@gmail.com

<저작권자 © 더피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