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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어 올린다

과시욕·SNS·불황의 조합 ‘있어빌리티’

기사승인 2016.04.08  09:31:07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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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대 새내기 전업주부 A씨는 요즘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하루에 한번 자신이 만든 요리 사진과 레시피를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것이 일상의 낙이다. 때로는 푸아그라나 캐비어 등의 고급 식재료를 써보기도 한다. ‘가니쉬’나 ‘플람베’ 같은 단어로 레시피를 설명할 때는 전문 셰프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하지만 정작 맛을 본 남편의 평가는 그리 썩 좋지 않다.

#2. 40대 남성 B씨가 등산에 입문한지는 이제 1년째다. 초보 등산인인 셈이지만 장비만큼은 전문 산악인 못지않다. 100만원을 호가하는 고어텍스 등산복은 물론이고 배낭이나 등산화도 최고급 브랜드 제품만을 사 모은다. 구입한 장비는 사진을 찍어 온라인 등산 카페에 업로드한다. 사진을 올릴 때마다 부러움 섞인 회원들의 댓글이 이어지지만 B씨가 정작 산을 찾는 횟수는 두 달에 한번 남짓. 그것도 동네 뒷산이 고작이다.

   

우리 주변, 혹은 온라인상에서 종종 만나볼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A씨와 B씨의 공통점은 타인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는 것.

실제 생활과는 조금 차이가 있더라도 ‘있어보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를 두고 최근에 등장한 신조어가 바로 ‘있어빌리티’다.

‘있다’와 영어로 능력을 뜻하는 ‘어빌리티(ability)’를 합친 있어빌리티는 말 그대로 있어보이는 능력을 의미한다.

문경호 플랜얼라이언스 대표는 “있어빌리티를 추구하려는 것은 (실제로는) 없기 때문”이라며 “물리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부족할 때 있어보이는 소품이나 음식 등을 획득하고 이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면서 위안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라고 언급했다. 간단히 말하면 있어빌리티는 ‘허세’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빈대떡 신사’와의 차이점

생각해보면 허세라는 키워드는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무전취식을 하다 요릿집 문앞에서 매를 맞는 양복 신사의 스토리가 담겨있는 노래 ‘빈대떡 신사’가 발표된 것이 1940년대다. 소설가 채만식은 1934년 발표한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열악한 주머니 사정에도 담뱃가게 주인 시선을 의식해 비싼 담배를 사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했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같은 큰소리는 예전부터 늘상 들을 수 있었던 술자리 레퍼토리. 하는 말만 들으면 람보와 이소룡이 따로 없을 군대, 싸움 이야기에는 대한민국 보통 남성들의 허세심리가 투영돼있다.

그렇다면 빈대떡 신사와 있어빌리티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는 걸까. 가장 큰 차이는 허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있어빌리티를 올해의 소비트렌드 중 하나로 제시한 <트렌드코리아 2016>은 “허세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다”며 “요즘엔 하나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또한 “‘있어 보이게 하는’을 강조하면 있는 척이 되지만, 능력에 방점을 찍으면 포장력이자 연출력이 되고 자신을 브랜딩하는 하나의 기술이 되기도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허세, 혹은 있어빌리티는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라며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면이) 너무 없어도 문제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내보이려는 욕구이기 때문에 (삶의 의지를 북돋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있어빌리티를 추구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16>은 ‘돈’과 ‘센스’, 그리고 ‘인맥’을 제시했다.

이중 가장 보편화된 것은 이른바 ‘돈 자랑’이다. 명품, 해외여행, 고급 레스토랑 등의 인증샷을 통해 재력을 과시하는 유형이다.

‘센스 있어빌리티’는 자신만의 세련된 감각을 자랑하면서 남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유행에는 관심 없는 듯 자신만의 개성을 보이려는 심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유명인사와의 친분관계를 남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인맥을 통한 있어빌리티의 구현이다. 최근에는 유명인과 SNS 친구맺기 여부가 ‘인맥 있어빌리티’의 관건이 되기도 한다.

있어빌리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SNS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거주학과 교수는 “있어빌리티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상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일상을 자랑하는 트렌드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모바일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전 연령층에서 SNS 소통이 일상화됐다는 것은 개인이 자기 자신을 어필하고 알릴 수 있는 채널, 혹은 미디어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온라인 공간을 통해 있어빌리티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

   
▲ 있어빌리티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큰 배경은 일상을 자랑하는 채널이 된 SNS다. 11번가는 올해 있어빌리티 기획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는 “과거 게시판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소통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익명의 공간에서 나타났다면, SNS에서는 자신과 상대방이 모두 드러나다 보니 타인을 의식하게 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 교수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중 하나는 증폭효과다. 어떤 표현을 해도 좀 더 과장된 형태로 표출해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면서 “이러한 온라인 증폭효과와 타인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문화, 그리고 지인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관계망 속에서 타자를 의식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SNS의 고유한 특성들이 결합돼 (있어빌리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한다”고 진단했다.

SNS를 통해 자신만의 취향을 타인과 공유하는 마니아 문화가 보편화된 것도 있어빌리티 현상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준영 교수는 “이른바 ‘덕후’나 마니아들 사이에서 고가의 장비를 자랑하는 것도 (있어빌리티의) 중요 포인트”라고 전했다.

안 비싸도 있어보이는 ‘꿀팁’

있어빌리티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불황을 제시하는 전문가도 있다. 문경호 대표는 “외롭고 (금전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위안과 안심을 주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며 “불황으로 인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불황의 그늘이 짙다는 것은 그만큼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굳이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있어빌리티를 가능케 해주는 ‘꿀팁’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다.

이준영 교수는 “사람들은 쉬운 방법으로 그럴싸해보이게 만드는 방법에 열광한다. 쿡방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러한 꿀팁의 연장선상일 수 있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가 있기 때문”이라며 “제품을 구매할 때도 엄청나게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과시용 아이템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교수는 “있어보이게 만든다고 해도 어렵거나 힘들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이어서는 안된다”며 “‘대충’ ‘빠르게’는 (있어빌리티의) 중요한 개념이다. 이는 최근 유행하는 스낵컬처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겸손이 미덕이었던 과거와 달리 서구화된 사고방식이 젊은 세대들에게 널리 퍼지면서 자기과시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가 형성된 것도 있어빌리티 확산의 배경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자신을 감추고 소극적으로 표출하는 행위에 대해 젊은 대중들은 더 이상 멋지지 않다고 느낀다”며 “적극적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장점을 드러내면서 과시하고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것이 솔직하고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억지 겸손’은 오히려 가식이고 답답한 것으로 여긴다”고 언급했다.

이어 “요즘 젊은 층은 사는 것이 불안하고 물질적으로 궁핍하다보니 있어보이는 사람에 대한 선망이 있다. 자신도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고 타인에게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있다”며 “향후 이들의 처지가 안정적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다. 불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색적인 인터넷 문화도 계속될 것 같다”며 자기과시의 흐름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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