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청춘에게도 추석은 오는가
빼앗긴 청춘에게도 추석은 오는가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5.09.11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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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취업에 치이고 결혼에 볶이고…바뀌어가는 명절 의미

[더피알=이윤주 기자]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성큼 다가왔다. 추석하면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는 모습을 생각하지만 이젠 홈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요즘 20대들은 송편은커녕 가족·친지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여기 추석이 전혀 반갑지 않다는 4명의 청년이 있다. 각자의 사연은 이러하다.

“노량진 특강이 내 명절” - 안영이(26·가명)

▲ (자료사진) 취업을 준비 중인 한 여학생. ⓒ뉴시스

공무원 고시생에게 명절은 ‘특강기간’이다. 강제 수업은 아니지만 특강이 반갑기만 하다. 지난 설에는 없는 수업 핑계를 대며 집에 내려가지 않았는데 이번엔 진짜 수업이 있어서 다행이다.

주변 고시생 친구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은 오랜만에 엄마아빠를 본다며 좋아하지만, 몇몇은 눈치 보인다고 집에 가는 것조차 거부한다.

난 후자에 속한다. 내 코가 석자다 보니 가족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 심지어 친척 중에 공무원이 4명이나 된다. 딱히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시진 않지만, 다정한 미소와 작은 관심마저도 괜히 부담스럽기만 하다. 고마운 분들인데 나 혼자 마음이 불편한 것이겠지….

삼수생으로 2년 늦게 대학에 들어가 벌써 26살이 됐다. 재수 2년, 대학 4년, 졸업하자마자 다시 공무원 준비 중이다. 24살만 되도 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을 거다. 주변 친구들이 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도 밤 11시까지 야간강의를 들어야 한다. 아, 올해는 진심으로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다. 내년에 공무원에 합격해서 당당히 찾아갈 것이다.

“7만원과 맞바꾼 연휴” - 장백기(24·가명)

상품판매 단기 알바를 하는 사람들에겐 추석과 같은 명절 때가 대목이다. 하루에 9시간 동안 일하며 일당 7~1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연휴 전후로 열흘 동안 일하기도 한다. 계산해 보면 70~100만원이다.

단기적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나. 가족들 품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이리저리 돈 나갈 곳이 많을 시기 아닌가. 결국 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작년 연휴에 급하게 돈이 필요해 마트에서 레고 판매 알바를 했다. 가족들이 우르르 마트에 장보러 오고, 아이들이 엄마 손을 붙잡고 지나갔다. 몇 시간씩 한 자리에 서서 일하면서 드는 생각은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였다. 괜히 슬퍼져서 눈가가 촉촉해 지기도 했다.

연휴가 되면 자연스레 좋은 알바자리가 없나 알바 사이트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번 연휴도 아직 모집 중이지 않을까?

“공채 시즌에 어딜가” -장그래(26·가명)

▲ (자료사진) 서울의 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뉴시스

나에겐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다. 하반기 공채가 10월 초에 다 걸쳐있다. 이번 연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관광회사, 무역회사, 삼성, CJ, 현대차 등 웬만한 대기업 공채는 전부 준비 중이다. 현재 1차 서류가 붙은 해운회사도 있고 관광회사는 면접이 남았다. 오늘은 여행사 견학을 다녀왔는데 명문대 출신에 최종면접까지 간 능력자까지….

준비할 것이 많아 조급하다. 중국어 자격증과 지상직승무원 CRS 자격증도 따야할 것 같다. 보다시피 추석은 추석이라 불리는 그냥 보통날이다.

친척들도 많아봐야 일 년에 두 번 보는 건데... 물론 가고 싶다. 하지만 사실상 취업할 수 있는 나이한계선이 있질 않나. 여자에겐 26살이 딱 그 시기인 것 같다. 요즘 시대는 나이도 스펙이니까.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미친듯이 도전해 볼 생각이다. 내년에 월급타서 선물 들고 떳떳하게 집에 가고 싶다.

가족들이 없는 조용한 집 대신 24시간 카페를 갈 예정이다. 그곳에 가면 명절을 혼자 보내더라도 외롭진 않을 것 같다.

“러시아로 일상탈출” - 한석률(30·가명)

연휴 하루 전인 25일에 떠나는 러시아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난 2년차 직장인이고, 친구들은 취준생이다. 같이 놀러가고 싶지만 취준생은 돈이 없고 여유도 없지 않나. 결국 동행할 사람이 없어서 여행 카페에서 만난 이와 떠난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이런 소소한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추석이 연휴라고 하지만 가만 보니 진짜 쉴 수 있는 날은 아니었다. 취업하면 더 이상 명절 스트레스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애인은 있나, 결혼할 시기가 됐는데 왜 안하냐…” 오지랖 넓은 친척들의 걱정은 매년 새로워진다.

부모님도 이러한 마음을 아셨는지, 이번 여행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아니면 친척들에게 혼자 궁상떠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신 걸까? 어쨌든 이번 연휴, 잘 먹고 잘 놀다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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