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저널리즘 시대, 기자에게 필요한 ‘브랜드’
브랜드 저널리즘 시대, 기자에게 필요한 ‘브랜드’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3.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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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오명 벗고 저널리즘 회복하는 단초

지난해 주목받은 여러 신조어 중 언론계에 경종을 울린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기레기’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는 언론을 향한 세간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언론사 숫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저널리즘의 질적 발전은 그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기자 개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케 해주는 대목이다. 공급과잉의 언론시장에서 기자로 ‘롱런’하기 위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추는 것은 필수 덕목이 돼가고 있다. 기자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점점 옅어지는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①브랜드 저널리즘 시대, 기자에게 필요한 ‘브랜드’
②언론계, 제2·제3의 손석희 나오지 않는 이유
③“기자는 연차순이 아니다”
④“독자가 실망하는 순간 브랜드는 깨져”

[더피알=문용필 기자] 최근 기업 홍보와 마케팅 분야에서 ‘브랜드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이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말 그대로 ‘브랜드’가 ‘저널리즘’을 구축하는 것인데 이는 기업들이 언론홍보, 또는 광고에 의존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언론사가 독점적으로 소유했던 기존 저널리즘의 개념이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꼭 브랜드 저널리즘이 아니더라도 SNS를 비롯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린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언론 기사를 통해서만 정보와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다.

때로는 전문성을 갖춘 개인 블로거가 언론보다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디바이스의 발달은 기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현장감 넘치는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 변화에 위기감을 느껴야 할 언론들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모바일 전용 페이지를 만들고 SNS를 통해 뉴스를 노출하는 등 플랫폼에 발맞추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상당수 기자들은 여전히 종전과 비슷하게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하는 모습이다.

기술의 진보는 기자들의 취재방식을 편하게 만들어줬지만, 그야말로 ‘발로 뛰는’ 기자는 점점 찾아보기 쉽지 않은 시대다. 실제 취재에 공을 들인 소수의 기사들을 제외하면 고만고만한 퀄리티의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급변하는 언론환경 속에서 기자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의 뉴스에서 양질의 신뢰할 수 있는 재미와 논리를 가진 공적 지식에 대한 수요는 ‘정보 풍요의 역설’로 인해 더 늘었다”며 “누구나 정보를 제공하고 어디서나 얻을 수 있지만 내가 진짜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결국 소수의 믿을만한 ‘브랜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제한된 플랫폼만 있었고 그 플랫폼이 주는 ‘완장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희석되고 있다”며 “보다 많은 사람이 경쟁을 하게 되고 플랫폼에 따른 완장효과가 사라지면서 콘텐츠를 갖고 스스로 브랜드화에 성공하는 기자가 빛을 발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최민영 <경향신문> 미디어기획팀장은 “웹과 모바일이 발달하면서 기사소비에 있어 언론사 브랜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독자들은 기사 자체를 놓고 기사소비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공급과잉 언론시장, 줄어드는 ‘파이’

기자 개개인의 브랜드화가 절실해진 배경에는 언론시장의 공급과잉이 큰 몫을 차지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2014년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2013년 일간지와 주간지(종이신문), 방송, 인터넷 신문 등을 합한 기자직 종사자는 총 2만7398명(3156개사)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3060개사, 25554명)에 비해 7.2% 늘어난 수치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월간지 등 매거진을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중 일반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인지되는 매체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계 종사자가 아니면 이름조차 생소한 매체들이 많다. 물론 매체규모와 네임밸류에 따른 일종의 ‘계급차’는 존재하지만 과거 상당한 사회적 위상을 갖고 있던 기자라는 직함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는 직업군의 하나가 돼 버렸다.

언론사 수와 비례해 기자 숫자도 늘어나고 있지만 신문과 방송 등 전통 미디어의 수익구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연감과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 2조589억원이었던 지상파 방송 3사(지역MBC포함)의 광고매출액은 2013년 1조7728억원으로 떨어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사이트에 공시된 35개 종이신문사의 2013년 결산 재무제표를 분석, 정리해 지난해 발표한 ‘2014 신문사 재무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언론은 전년 대비 -4.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총 매출액은 2조4393억원이다. 특히 무료신문과 스포츠지가 –49.18%, -21.97%의 두드러진 하락세를 나타냈다.

신문업계 ‘빅3’로 불리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전년보다 7.11% 떨어진 3363억원, <중앙일보>는 2.26% 감소한 3061억원,<동아일보>는 -4.89%인 약 2842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 자료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2014 한국언론연감>

 

이같은 통계들을 종합하면 언론의 ‘양적 팽창’은 다소 과장하면 결국 점점 줄어들고 있는 ‘파이’를 나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언론사와 기자들의 숫자가 하도 많다보니 이제는 세간을 발칵 뒤집을 만한 콘텐츠가 아니면 특종이나 단독보도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특종이나 단독보도가 나오면 수많은 인터넷 언론사가 이를 받아쓰는 이른바 ‘우라까이’(베껴쓰기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 기사들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쏟아져 나오곤 한다. 이렇게 되면 정작 특종을 터뜨린 언론사의 원 출처 기사는 인터넷 상에서 금세 묻혀버리기 일쑤다. 유명인사의 단순한 ‘신변잡기’에 ‘단독보도’ 꼬리표를 다는 기사들도 허다하다.

여전한 ‘우라까이’, 그리고 ‘어뷰징’

더 큰 문제는 이같은 기사들을 동일한 언론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출고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를 ‘어뷰징 기사’라고 하는데, 비단 매체력이 크지 않은 언론사에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메이저 부류에 들어가는 언론사들도 어뷰징에 열심인 경우가 많다.

이는 포털사이트에 얽매여 있는 한국 특유의 뉴스 유통 구조와 연결돼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지난해 펴낸 ‘2013 언론수용자의식조사 발표’에 따르면, 2013년 9월 1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국민 50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지난 일주일 간 인터넷 뉴스 이용률은 65.4%였는데 이 중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 뉴스 제목이나 사진을 보고 클릭해서’ 인터넷 뉴스를 이용했다는 응답(복수응답)이 71.5%를 차지했다.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른 인물이나 사건을 찾아서’(48.5%)라는 답변은 48.5%였으며 ‘포털 사이트 뉴스란(홈)에서 관심 있는 분야/주제의 뉴스를 찾아서’라는 대답이 33.5%였다. 인터넷 뉴스를 접하는 주요 플랫폼이 개별 언론사의 사이트가 아닌 포털사이트라는 이야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언론사들은 포털사이트에서의 ‘트래픽 경쟁’에 열을 올리게 된다. 트래픽은 곧 광고유치와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대다수 언론사들이 포털사이트의 인기검색어를 이용하거나 특정 언론사의 특종을 베껴 쓴 기사를 쏟아낸다. 공을 들여 기획하거나 취재하지 않고도 대중이 좋아할만한 기사를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십분 안에 뚝딱뚝딱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사들은 같은 주제를 가진 타 언론사의 기사에 금세 묻히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어뷰징’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인기검색어를 주제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쓴 후 네티즌의 반응이나 해당 사건·인물과 관련된 과거 이력을 재차 전하는 기사를 쓰는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물론, 이는 언론사의 수익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개선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포털사이트는 어뷰징을 심하게 하는 언론사들에게 ‘제휴 중단’과 같은 물리적 조치를 취하거나 비슷한 뉴스를 묶어서 노출하는 ‘클러스터링’을 도입하고, 언론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어뷰징의 남발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 취재에 열중하고 있는 각 언론사의 기자들(자료사진) ⓒ뉴시스

이와 관련, 온라인 미디어 전문가인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는 “언론사가 수익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콘텐츠나 광고를 유치하거나, 부가수익모델을 만들어내는 등 몇 개 되지 않는다”며 “최근에는 부가수익모델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견해도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언론사는) 콘텐츠나 광고 쪽에 신경을 쓴다. 당연히 트래픽에 목을 맬 수밖에 없고 트래픽을 올리려면 그런(어뷰징) 구조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민영 팀장은 “사용자들은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공짜로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있다”며 “좋은 온라인 저널리즘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할 여유도 없이 시장질서는 이미 어지러워졌다. 앞으로도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껴쓰기·어뷰징 기사의 범람은 기자들의 브랜드화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기자 본연의 취재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트래픽을 위한’ 기사를 쓰게 되면 전문성과 거리가 먼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기자 수가 많지 않은 소규모 언론사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차근차근 기자 업무를 습득해야 할 신입기자들이 기본적인 ‘작법’만을 익힌 후 검색어 기사생산에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장을 누비며 특종을 터뜨리는 ‘로망’을 품은 기자 초년병들에게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끼게 한다.

게다가 많은 언론사들은 이같은 베껴쓰기·어뷰징 기사를 생산하면서 ‘인터넷뉴스팀’ 등 정체불명의 ‘바이라인’(기사 작성자의 이름)을 사용한다. 작성자 이름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기사에 대한 책임감도 낮아지게 되고, 결국 기사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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