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2·3세 PI 어떻게 하나
재계 2·3세 PI 어떻게 하나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5.02.1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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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미지와 직결되는 오너이미지…전략대응 필요

[더피알=안선혜 기자] 두산그룹 4세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이 최근 낙과를 사용해 농가에 도움을 주는 잼 브랜드 ‘이런 쨈병’을 출시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 때 재계의 ‘이단아’로 비쳐졌던 그는 광고쟁이로 이름을 날리면서부터 독특하지만, 자기 일에 열정적인 전문가로 포지셔닝했다.

반면,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은 오너 일가의 ‘평판 관리’에 비상을 걸었다. 한국적 정서에서 오너인 최고경영자의 이미지는 기업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대한항공의 이미지에도 크나큰 타격을 줬다. (관련기사: 대한항공, 오너딸 월권에 ‘공든 탑’ 무너져) 때문에 기업의 대외활동에 있어서 전략적 PI(President Identity)는 필수다.

허나 조직 내에서 오너와의 접촉이 불가하거나, 전문가들조차 각 기업의 니즈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재계 2~3세들의 경영권 승계 시점은 다가오고 있고, 이들에게 부여된 이미지는 향후 기업 경영의 흐름을 읽는 주요 키워드로 떠오를 전망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라” “10년 후 삼성의 현재 주력 사업은 다 사라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던졌던 이 말들은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며, 혁신의 주요 화두(話頭)가 됐다. 수년에 한 차례씩 이 회장은 공식석상에서 이 같은 ‘충격요법’으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경영자 이미지를 구축했다. 강한 카리스마는 말할 것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 회장의 발언들이 그저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PI(President Identity) 구축을 위한 전략적 행보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PI는 CEO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실질적 액션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아젠다를 설정해 발표하는 것이다. CEO 개인이 가진 리더십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인 셈이다.

한국적 정서에서 오너인 최고경영자의 이미지나 정체성(PI)은 기업의 정체성(CI·Corporate Identity)으로 직결되곤 한다. 삼성그룹 하면 이건희 회장을 떠올리고, 현대자동차그룹하면 정몽구 회장을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의 일명 ‘땅콩회항’ 사태는 오너 일가인 조현아 전 부사장 개인의 잘못이지만, 당사자인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은 함께 커다란 스크래치를 입었다.

대한항공을 향해 사명을 바꾸라거나 일부에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한 반응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사건 당시 오너를 보호하려는 과한 충정에서 비롯된 대한항공의 대응이 사태를 더 악화시킨 면도 있다. (관련기사: ‘비행(非行)’이 돼버린 ‘비행(飛行)’, 누구 책임인가?)

회장님 보지 못하는 PI 전략, 의미 없다

이렇듯 경영자 개인의 이미지가 해당 기업과 조직에 대한 사회적 평판을 좌지우지하다보니 PI에 대한 중요성에는 대체로 동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관련 컨설팅을 담당하는 회사들은 다소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은 오너 일가의 ‘평판 관리’에 비상을 걸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2일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기 위해 고개 숙여 입장하는 조 전 부사장 모습. ⓒ뉴시스

컨설팅업계 한 전문가는 “사실 VIP 관련한 프로젝트는 비공개에 시시하다”며 “일단 PI 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회장님의 속성을 분석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만날 수가 없다. 고작 인터뷰나 연설문, 비디오 등을 보고 한 분석이 제대로 맞아들어가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PI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성격, 사고방식, 행동양식 등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고 회사의 전략과 연결성을 찾아야 하는데, 첫 단추인 경영자 개인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일이 틀어져버린다는 지적이다.

관찰자 시점에서 오랫동안 바라보고, 사적 혹은 공적 주재 미팅에서 의뢰자의 특성 등을 파악해야 자연스런 방향성과 개선안이 나올 텐데, 현실적으로 이런 과정을 갖는 게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도 불만족스러운 점은 존재한다. 일단 PI 관련 프로젝트를 외부에 발주할 때는 PR회사(홍보대행사)를 비롯해 광고회사, 이미지컨설팅사 등에 의뢰를 하는데 원하는 니즈를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곳이 없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거 PI를 전문으로 내세웠던 한 컨설팅사는 PI 관련 취재 요청에 “현재는 해당 업무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론칭 당시만 해도 다양한 언론에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업계 전문가는 대안으로 여러 회사들이 공동으로 협업하는 방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해서는 안 되고 이미지, 전략, 언론, 커뮤니케이션 파트가 협업체를 구성해 투입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PI의 구성요소 자체가 일반적으로 MI(Mind identity·마음가짐), BI(Behavior identity·행동), VI(Visual identity·외모)로 분류되거나 MSAV(Message·Schedule·Agenda·Visual)로 압축되기 때문이다.

PI는 경영진과의 실제적인 장기간 스킨십이 요구되다보니 회사 내부에 TF(Task Force)팀을 구성해서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꼽힌다. 내부 직원들은 길게는 수십 년 간 회장을 보아오면서 라이프스타일을 꿰차고 있고, 회사 전략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홍보팀이나 비서팀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기도 하고, 때론 기획팀이나 경영혁신팀에서 담당하는데 어느 부서에서 진행하느냐에 따라 중점을 두는 포인트가 조금씩 달라진다.

CEO의 아이덴티티를 제대로부여하기 위해서는 CEO 개인의 특징 외에도 다양한 환경적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경제적 상황,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이미지와 비전이 다르고, 경영진이 속한 조직의 업종과 문화에 따라서도 다르기에 전방위에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가지각색 PI 실행…소품 활용, 인물 연계

아이덴티티를 실행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인터뷰 등을 통한 언론관계 형성이 될 수도 있고, 사회공헌활동이 될 수도 있다. 때론 추상적 이미지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연계전략을 실시하기도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위인 연계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과 연계이미지를 구축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도 케네디 일가와 동일시를 추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시절 유세를 마친 후 빨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지지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진대제 전 장관 이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혁신과 젊음의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정치인들이 늘었다. ⓒ뉴시스

 

구체화된 이미지 구축을 위해 때로는 사물과 연결 짓기도 한다.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은 2000년 정보가전총괄 사장에 임명되면서 카우보이 모자에 콤비 양복 차림을 하고 나타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으로 취임식을 대신했다. 주요 언론에서 이를 전하며 대단한 화제를 모았었다.

그는 이후에도 국제가전전시회(CES)와 같은 주요 행사마다 유사한 차림으로 나타나 스피치를 하면서 ‘IT 카우보이’ 등의 별명을 얻었다. 그가 카우보이 모자를 통해 전달한 건 도전정신과 역동적 이미지였다.

어떤 장소에 누구와 가는지가 때로는 중요할 때도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러 갈 때 누구와 동행했는지에 따라 언론은 메시지를 부여했다. 소위 인물 연계 전략이다. 신임 CEO가 취임한 후에도 첫 출근 시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향후 방향성은 읽힌다.

과거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는 취임 첫 공식일정으로 부산에 있는 증권선물거래소를 찾아 이목을 집중시켰다. 갑자기 경제 수장이 바뀐 데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씻어내고, 기존 정책 기조를 이어나갈 것이란 확신을 주기 위해서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모든 행동들이 즉흥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되고 아이덴티티 및 전략 방향성이 모두 짜인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함수 에스코토스 대표는 “아이덴티티를 짤 때는 CEO나 리더가 실제 수행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며 “민생투어라든지 어떤 장소를 방문하는 행보를 보일 때도 자칫 이벤트성으로 비쳐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조직 변화, 위기 후 턴어라운드 시 PI 실행

기업에서 PI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때는 주로 신임 CEO가 선임되거나, 오너가의 경영권 인수인계 직전직후다. 혹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가 일어났을 때 턴어라운드 관점에서 이를 실행하기도 한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에도 2~3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오너 자제들의 평판은 상당히 민감하고 중요한 영역이다. 후계자의 대내외 평판에 따라 자칫 승계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도 있고, 취임 이후 조직을 장악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이미지는 때로는 기업 홍보 차원에서 유리하기도 하다.

 

▲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은 최근 여론을 들끓게 한 갑질 논란의 틈바구니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신라호텔 출입문을 들이받은 택시 기사의 형편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모든 변상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뉴시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의 경우 최근 여론을 들끓게 한 갑질 논란의 틈바구니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신라호텔 출입문을 들이받은 택시 기사의 형편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모든 변상을 취소하고 치료비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던 게 아직도 대중들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이부진 사장, 홍보와 PR의 차이 아나)

 

이 사장에게 부여된 별명은 ‘리틀 이건희’. 외모부터 경영 스타일까지 부친인 이건희 회장과 비슷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삼남매 중 유일하게 평사원으로 입사했다는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재계에서 2~3세들의 평사원 입사는 전략적 선택지가 되는 듯도 하다.

언론에서 허윤홍 GS칼텍스 상무를 설명할 때는 항상 주유원 근무 경력이 따라붙고는 한다. 허 상무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2002년 GS칼텍스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3개월 간 주유소 지점에서 주유원 생활을 했는데, 이 이력 덕에 매번 밑바닥부터 시작했다는 비교적 건실한 이미지를 어필한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도 대학을 졸업하자 미국 알래스카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선원으로 일한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김 부회장은 하루 16시간씩 온갖 허드렛일부터 참치를 잡아 냉동시키는 과정까지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안 차남인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회장도 대학 졸업 후 창원공장에서 참치캔 포장, 창고 야적 일 등을 하다가 청량리시장 영업사원으로 일한 경력 덕에 ‘현장을 아는’ 경영자 이미지를 구축했다.

2~3세들의 이미지 구축…고고함보단 건실함으로

때론 부친과는 다른 색깔을 내면서 기반을 잡아가기도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스타일은 종종 비교가 되곤 하는데, 이 회장이 제왕적 리더십을 구축했다면 이 부회장은 부드럽고 세련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과 함께 국내 최대 재벌가 오너 3세로 주목받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유교적 분위기가 강한 현대가 자제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언론에서 그를 소개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는 ‘소탈, 노력파, 겸손, 예의바름’ 등으로 소박함과 건실함을 내세워 현대가의 분위기와 색을 맞추었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매년 1월 2일 봉사시무식을 연다. 올해는 연탄나눔을 실시, 정 회장이 지게를 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모습이다. 정 회장은 올해 변화와 혁신을 키워드로 내걸고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뉴시스

최근 PI 측면에서 이미지 변신을 꾀하며 주목받고 있는 2세 경영자도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은 지난 2008년 취임 이후 조용하고 보수적인 경영자로 인식되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 인터뷰 등도 거의 하지 않았고, 경쟁사들이 신규 출점 등 공격적 행보를 보일 때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정 회장이 올해 들어 부쩍 달라진 모습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리미엄아울렛과 복합쇼핑몰 진출을 눈앞에 둔 가운데 면세점 사업에도 관심을 두는 등 공격적 스타일로 경영방향을 선회했다는 것. 이런 일련의 변화는 그의 신년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올 초 정 회장은 “과감한 변화와 혁신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2010년에도 ‘PASSION VISION 2020’을 선포하면서 신성장동력 확보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비전 선포 후에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올해엔 다양한 새로운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경영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려는 모양새다. 정 회장은 매해 1월 2일 봉사시무식을 열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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