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치료] 자살 부르는 선정적 언론보도 막아야
[자살치료] 자살 부르는 선정적 언론보도 막아야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4.04.09 1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 좌담(3) 자살보도 권고기준 ‘무용지물’, 베르테르효과 조장
전문가들은 죽음마저 독자 유입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언론의 무분별한 자살보도를 지적한다. 사진은 자살 관련 언론의 선정적 헤드라인.

[더피알=강미혜 기자] 더피알은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자살이 만연한 한국적 상황을 심층 진단하고, 소통과 치료를 위한 현실적 방안을 다각도에서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적 자살 특수성과 자살예방 현황 및 대책에 이어 자살보도와 관련한 국내 언론의 문제점을 점검해 본다.  

①한국적 자살 특수성
②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캠페인 논란
③자살보도 권고기준과 미디어 역할 

 좌담회 참석자 (가나다순)

김동석 더 커뮤니케이션즈 엔자임 대표(이하 김 대표)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하 송 교수)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이하 유 교수)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정신과전문의(이하 이 센터장)
진행- 박일준 한국갈등관리본부 대표/ 정리- 강미혜 기자·사진- 성혜련 기자

자살 소식은 대부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게 된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메인화면, 각 언론사 사건사고에 빠지지 않는 뉴스가 자살이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보면 자살을 사회문제로 보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공론화 한다기보다, 자극적 타이틀을 앞세워 흥미위주의 뉴스로 소비시키는 경향이 짙은 듯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언론의 무분별한 자살보도가 베르테르 효과(유명인의 자살이 모방 자살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조장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하는데, 자살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박일준 한국갈등관리본부 대표(오른쪽)와 김동석 엔자임 대표.
박일준 한국갈등관리본부 대표(오른쪽)와 김동석 엔자임 대표.

유 교수  자살보도에 대해선 정말 할 말 많다. 너무너무 심각하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선정적 헤드라인을 달아 클릭률을 높이려는 언론사들이 자살마저 독자 유입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동반자살’ 등의 표현도 근절돼야 할 것이다. 30대 주부가 5살 아이를 안고 고층에서 뛰어내려 죽는 건 동반자살이 아니라, ‘살해 후 자살’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망자에 대한 예우를 중시해서인지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인색하다. 요즘엔 언론이 동반자살을 넘어 공감자살이라고도 하더라. 부지불식간 자살을 미화하는 듯한 그런 표현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해외의 경우 국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언론보도에 자살이란 단어도 못쓰게 하는 곳이 있다. 반드시 단신으로만 처리할 것, 자살의 이유를 명시하지 않을 것 등의 가이드라인이 일종의 묵계처럼 지켜지기도 한다. 우리언론도 서로 간 지켜야할 선을 분명히 하면서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언론이 자살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해 모방자살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파파게노효과를 가져와야지,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자살을 묘사하거나 자극적으로 보도해선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상에서도 여과없이 방영되는 자살기도 장면, 자살을 암시하거나 실제 시도하는 듯한 모습들은 앞으로 철저히 걸러내야 할 것이다.

송 교수  자살보도로 영향력을 가지려는 언론과 자극적 보도에 점점 더 반응하는 사회가 자살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고,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쉽지 않겠지만 자살보도 지침을 지키지 않았을 시 법적 제재가 실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 등 기존 언론과 유사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파워 미디어에 대해서도 똑같이 규제하고 엄격하게 처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이 센터장  언론의 자살보도를 비유하자면, AI가 저쪽 지역에서 발생했는데 굳이 거기까지 가서 일부러 발로 밟은 다음에 다른 지역 조류 키우는 곳에 가서 밟아대는 것 같다. 전염병을 더 많이, 빨리 전염시키는 것이다. 실제 자살은 전염병적인 요소가 많다. 기분이 우울한 사람 옆에서 있으면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처럼, 자살보도를 많이 접하면 자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수 있다. 무분별한 자살보도를 보고 있으면 언론사가 파업하면 우리나라 자살률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김 대표  정부나 언론이나 AI가 닭이나 오리가 매몰되는 식으로 눈으로 (여파가) 보이니까 크게 인지하고 빠른 예방책을 펼치는 데 반해, 자살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위험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한 일간지에서 보도한 자살 관련 시리즈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전문가의 단순 코멘트 수준이 아닌, 기사내용 자체에 대해 자살관련 의료전문가 두 명의 철저한 자문을 통해 밀도 있게 심층 취재해 자살의 심각성과 국민적 경각심을 심어주려 한 듯했다. 자살을 사회적 아젠다로 밀고 가는 언론의 그런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자살문제에 있어서도 언론이 언론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자살 관련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당장 마련해 놓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라도 지킨다면 언론보도로 인한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유 교수  우리나라는 2004년 국제기준을 종합해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했다가 지난해 현재 미디어 환경을 고려, 2.0 버전으로 개정했다. 내용을 보면 자살 보도 최소화, 자살 단어 사용 자제 및 선정적 표현 피하기, 자살 관련 상세 내용 최소화, 유가족 등 주변 사람 배려하기,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미화나 합리화 피하기, 사회적 문제 제기 수단으로 자살 보도 이용 않기,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 알리기, 자살 예방에 관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 등 꽤 상세하다. 이를 기반으로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일종의 미디어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권고’라는 게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어쩔 수 없다는 데 있다. 실제 언론사가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현재로선 패널티가 전혀 없다. 자연히 언론의 자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치열한 기사경쟁, 클릭률 전쟁 속에서 자정이 잘 안 되고 있다.

이 센터장  현실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언론에서 일 년 정도 자살 관련 보도를 안했을 때 자살률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살률이 현저히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자살문제와 관련한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막을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될 것이고.

유 교수  언론보도를 강제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인증제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한때 언론사들이 ABC 인증 사실을 홍보한 적이 있다. 외부기관에서 유가 부수를 인정했다는 점을 자사의 도덕성 혹은 정당성을 보여주는 데이터로 직간접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자살보도 권고기준도 이런 ‘인증제’를 부여해 보는 거다. 가령 ‘본 언론사는 보건복지부에서 인증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준수하는 언론사입니다’ 하는 식으로. 그만큼 현재로선 외부인증에 따른 각 언론사의 자발적 준수 움직임 외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된다.

자살의 원인이 복잡한 만큼 해결방안도 복잡하고, 그만큼 앞으로 각계에서 다양한 노력들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셨다.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 교수  우리사회가 자살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어떻게 줄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다. 자살예방국가전략을 담당하는 정부부터 조직적 측면에서 개선해 유기적 접근이 가능토록 해야 할 것이다.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살 만한 좋은 세상’으로 향해 가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살률만을 낮추려는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시급한 문제에 대한 즉각적 노력과 함께 복지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진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거듭 당부하지만 국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자살예방의 큰 그림을 그리고 그 로드맵 위에서 다양한 기관과 조직이 협력하는 민관협력체계가 하루 빨리 갖춰져야 할 것이다.

유 교수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능을 펼칠 때라는 점에 적극 동감한다. 금연법 시행으로 길거리에서 담배 못 피게 막았을 때 좀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만큼 흡연으로 인한 국민건강의 문제가 크다는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정책이었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모든 국민들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예방을 위한 단호한 정책을 펼쳐야 할 때다. 예산을 투입하고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는 한편, 관련 기관에 명확한 책임 소재를 따지고 평가방법에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등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살예방 캠페인도 하려면 단기성으로 그치지 말고, 일반 기업에서 하듯 타깃별 전략을 세워 중장기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또 언론사들이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준수하도록 시상하거나 패널티를 주는 식의 고민도 해야 한다. 지금껏 누구도 건드리기 힘든 부분을 정부가 이제라도 주도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김동석 엔자임 대표

이 센터장  현재 자살문제가 심각하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희망은 있다고 본다. 자살예방과 관련해 우리사회가 무언가 뚜렷하게 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공공영역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그것이 무브먼트(운동)화 된 적은 없다. 그 점에서 앞으로가 중요하다. 지진의 진원지처럼 자살예방을 위한 공감대가 확산될 수 있도록 무브먼트의 출발점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김 대표  맨 처음 얘기한 것처럼 자살의 원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데에서 자살예방의 논의가 시작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양한 원인에 따른 다양한 해법이 나올 수 있다.
자살문제는 단순히 정책만 바뀐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은 시스템적인 부분을 바꿔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자살은 아주 세밀한 심리적 부분도 고려해야 하기에 그 접점 안에서 개인에게 변화를 심어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또한 청소년·중장년·노년층 등 타깃별로 자살예방의 처방이 다 달려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맞춤형 솔루션도 하루 빨리 제공돼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