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은메달’ 우리는 그러지 말자
‘김연아 은메달’ 우리는 그러지 말자
  • 김현성 (admin@the-pr.co.kr)
  • 승인 2014.02.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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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문화돌직구]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아, 진짜 끝났다.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주었다. 대한민국이 써내려간 이야기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극적이다. 이번 대회의 가장 뛰어난 선수는 안현수(이제 빅토르 안이 더 어울리지만)였고, 가장 큰 이슈를 일으킨 건 김연아였다. 소치 동계올림픽은 한국과 러시아가 합작으로 쏘아올린 두 발의 충격적인 스캔들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시 돌이켜 봐도 하나하나가 정말 엄청난 사건들이었다. 한때 한국의 국가대표 선수가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메달을 휩쓸었고, 그가 쓰러뜨린 상대는 고국 대한민국의 스케이터였다. 빙상연맹은 올림픽 내내 테러 위협에 시달렸고, 그런 위기의 순간에 여드름도 마르지 않은 여고생 스케이터가 금메달을 거머쥐며 새로운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와중에 우등생 이상화 선수는 1등이 제일 쉬웠다는 듯이 너무도 간단히(그렇게 보였다!) 금메달을 목에 걸어 ‘될 놈은 된다’는 오래된 격언을 일깨워주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컬링에 ‘헐’ 이라는 전술용어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나만 놀란 것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된다. 정말로 흥미로운 것은 스케이팅과 피겨를 제외한 어떤 종목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못 따는 것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며, 올림픽 메달 순위가 그 나라의 국력과 비례한다는 식의 발상도 이제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든 나라들 중에 꼴찌가 가장 많다는 기사를 봤을 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창피해서가 아니라 뭐랄까 쿨, 하다고 할까.

이 모든 사건들도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도색 사건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금을 은으로 칠해버린 이 사건을 우리는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는 구조주의로 유명한데 어떤 구조 내에서는 그저 그런 수준의 선수가 세계에게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서 금메달을 뺏어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결과는 번복되지 않을 것이고 진실은 밝혀지지 않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된 정황인지 이미 알고 있다. 권력자의 입김에 의해 큰 그림이 그려졌고 그에 따라 치밀하게 각본이 짜였으며 또 적당히 이를 수행한 연기자 덕에 몽상으로 남아야 할 것이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권력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불행하게도 희생자는 모두가 인정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케이터였다.

전 세계인이 분노했다. 러시아만 빼고. ‘소치스럽다’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영어로도 만들어서 옥스퍼드사전에 등재시켜야 한다. 농담이다. 희대의 스캔들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고 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금까지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최근의 소식은 피겨 칼럼니스트 제시 헬름스가 야후에 올린 글인데, ‘스캔들, 사기극, 그리고 피겨 스케이팅의 죽음’이라는 논쟁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내용은 우리 모두가 정황적으로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1년 전부터 순위 조작을 꿈꾸며 국제대회의 심판진을 꾸려 러시아의 피겨 꿈나무들에게 점수를 퍼주기 시작했고, 이번 올림픽에서 그 냄새나는 열매를 거뒀다는 것이다. 스포츠가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요즘은 많지 않겠지만, 거기에 정치적 판단이 무식하게 개입할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 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올림픽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김연아 소식을 다룬 뉴스의 인터넷 댓글에는 러시아를 잔뜩 벼르는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이른바, “평창에서 보자” 시리즈다. 분하고 열통 터지는 마음에 쏟아낸 말이니 이해도 가고, 조금 과격한 표현이라도 대략 공감하며 웃어넘기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평창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물론 김연아 선수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기보다는, 어느 국가라도 자국에서 그 정도 규모의 국제대회가 열리게 되면 그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4년 뒤 열릴 평창동계올림픽이 그 어느 때보다 판정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준비되기를 바란다. 판정과 관련된 행정은 최대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하고, 또 그 점을 대회의 중요 과제로 전 세계에 알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다.

대한민국이 결코 ‘소치스럽’지 않으며 그 사건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우리가 ‘소치’와 같은 잘못을 범하는 순간 지금까지 우리가 쏟아냈던 모든 비난은 정당성을 잃는다. 그것이야말로 김연아 선수의 메달을 금은커녕 은, 보다 못한 것으로 만드는 행동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여러 의미에서 ‘Clean’ 올림픽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김현성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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