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심 끄고 각자도생, 할 만한가요?”
“정치에 관심 끄고 각자도생, 할 만한가요?”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4.02.20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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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남다른 세상] 청년논객 한윤형

▲ 청년논객 한윤형 씨.(사진 박세연 작가 sey-park@daysnights.co.kr)

[더피알=이슬기 기자] ‘키보드워리어’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논쟁을 하며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한윤형 씨는 자유기고가로 이런저런 글을 기고하고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어크로스> <안티조선 운동사/텍스트> <뉴라이트 사용후기/개마고원>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공저)/웅진지식하우스>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공저)/메디치미디어> 등의 저서를 내며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는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의 기자로 정치평론을 하고 있으며 최근까지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과 함께 정치 팟캐스트 방송을 했다.

“전 십년 넘게 매일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써왔으니까… 글은 일정정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겠지만요.(웃음)”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묻자 한윤형(31·사진) 씨는 멋쩍은 듯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최근 경향신문이 출판관계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꼽은 20명의 ‘뉴 파워라이터’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렸다. 이 명단에서 유일한 30대이기도 하다. 일찍이 2000년에 전국고교생 논리논술경시대회 대상을 수상하는 등 글쓰기에 재능을 보인 그의 필력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단련됐다.

고등학교 시절, 판타지 소설에 빠져있던 ‘문어체 소년’ 한 씨는 직접 판타지를 쓰고자 밀도 있게 책을 읽어나갔다. 이 독서는 신화학, 정신분석학, 문화인류학의 이론서들을 섭렵하는 수준까지 나아가 판타지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깊어졌지만 이 시절 우연히 접한 강준만과 진중권의 책들이 그를 정치평론의 세계로 인도했다.

“게시판에서 정치글을 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의 글에 완전히 동의했다면 저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남들의 글에 미진한 부분이 보이면 그걸 채우느라 답글을 다는 식으로 시작했거든요. 게시판 논쟁이 그렇듯 처음엔 원문을 링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글을 요약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거죠.”

인터넷 상에서 꽤 알려진 그의 별명은 ‘요약정리지왕’. 애초부터 논쟁의 상대보다 그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관전자들을 납득시키는 게 더 중요한 정치적 글쓰기를 하다 보니 요약정리하는 기술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상대의 글을 최대한 선의적으로 요약하는 편인데 합리적 핵심을 뽑아내려다보니 잡힌 스타일이다.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고 그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기에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렇게 다진 뒤에 그는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하강하는 사회 직시해야…필요 이상의 자책은 금물!
지난해 출간된 그의 저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어크로스>는 게시판에서 논쟁하던 시절부터 자유기고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몇 지면에 내거나 개인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듬어 묶은 것이다. 책 속에서 그는 공기업에 다니며 평범한 중산층 가장의 삶을 살아온 아버지의 급여명세서를 보고 자신은 이런 수입을 올릴 가능성이 거의 없을 현실과 맞닥뜨리는가 하면, 골목상권까지 침투한 SSM에 반대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자취생으로서 SSM을 이용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서술하며 사회 구조를 조망해간다. 개인적인 얘기부터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낸 흔적들을 모아보니 흔히 ‘88만원세대’라 불리는 그의 세대를 둘러싼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이전부터 각 매체의 ‘2030’이 붙은 칼럼의 단골 필자로 누구보다 자신의 세대에 대한 고민을 다각도로 해왔다.

“자본이 일상에 침투한 수준이 굉장히 심각한데, 우리는 하강하는 사회를 살아내야 하거든요. 많이 가지지 못하는 구조를 직시하고 각자의 기준을 조율해야죠.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많이 하는 얘기예요. 필요 이상의 자책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자유기고가 시절, 이가 아픈데 치과를 못 갔어요. 그땐 제가 계획성 없이 소비를 하는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언제 또 돈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잔고 20만원 갖고 치과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다양하지만 비슷비슷한 방식으로 다들 겪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자책만 하다보면 너무 어려워져요.”

실질적으로 이 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 실직 혹은 이직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 집 마련은 더 먼 얘기다. 이때 필요한 게 실천적 지식들이다. 구체적으로 실직을 하면 받을 수 있는 실직수당, 월세걱정 없이 살 임대주택 등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살피는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 그는 이런 종류의 실천적 지식이 삶의 각 영역에서 탄탄해져야 한다고 본다. 이 사실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절감했다고. 지난해 운동을 시작한 그는 SNS를 통해 ‘버피테스트’ ‘케틀벨’ ‘스쿼트’ 등의 다소 생소한 운동법 전파에도 적극적이었다.

“나잇살이 붙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효과도 보고 있어요. 저로선 워낙 정보가 없던 분야라 돈이 많이 들까 우려했는데, 알아보니 비싼 헬스클럽의 화려한 운동기구들이 꼭 필요한 건 아니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다이어트를 방해하기도 하고요. 어떤 분야가 산업으로 주목받으면서 과잉되고 그게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사회 전반에 심한 것 같아요. 사교육이 대표적이고요. 그 정도의 돈이 들지 않고 적절한 노력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올바른 방법들이 있거든요. 이런 대중교양들이 생활 전반에 필요한 거죠.”

‘대중교양’의 실종이 우리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는 정치영역에서도 대중교양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정치영역은 개인적 차원에서 노력해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다이어트나 교육보다는 까다롭다. 먼저 정치세력을 바라보는 방식과 나쁜 통념들을 해체해야 사회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 꼬여있는지 보이는데, 이를 개인들이 수용해야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들의 공감대 형성도 지난한 과정이지만 정치는 그렇다고 바로 바뀌는 성격의 분야도 아니다. 정치는 점진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어떤 국면을 만나야 바뀌는 것이기에 그렇다는 설명이다.

“가령 미국에서도 대공황이 오기 전에, 대기업 규제 법안들이 있었는데 국회에서 하나도 통과를 못했거든요. 그러다가 대공황이 오니까 다 통과됐죠. 대체로 그런 것 같아요. 환경재앙의 경우도 원전이 하나 터져야 논의가 활발해지죠. 어떤 계기가 오는데, 그때 나은 선택을 이끌어내려면 그때까지 관점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죠.”

먹고살기에 바쁘다가 간혹 정치에 관심을 두던 사람도 이내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오래된 통념만 확인한 채 냉소를 품고 마는 이유와도 통한다. 일상사가 빠듯한 중에 관심을 가져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렇게 일상에 치여 정치에 냉소하고, 정치 때문에 일상이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견고해진다. 

그는 최근 한 대학생의 대자보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은 정치에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공명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봤다. 너도 나도 불만이 없어서 입 다물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할 기회랄까.

그놈이 그놈?… 냉소·무관심은 대안 될 수 없어
“아마도 무관심한 채로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하다)에 전망이 보였다면 ‘안녕하냐’는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겠죠. 그렇지 않다는 게 이 세계가 가진 문제인데(웃음). 냉소나 무관심도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데 공감했다는 거니까, 당장 어떤 식의 움직임은 힘들겠지만 문제를 인지했으니 같이 고민해봐야겠죠. 관심이 생기면 더 알아보게 되니까요. 혹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이 계시다면 미디어스 한윤형 기자의 글을 추천합니다. 사안의 문맥을 잡기 편하실 겁니다.(웃음)”

그는 정리에 능할 뿐만 아니라,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비평에도 탁월하다. 편가르기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양쪽 진영 모두에서 욕을 먹기도, 진중권의 뒤를 이어 ‘모두 까기’의 계보를 잇는다는 핀잔도 듣는다. 혹시나 욕먹는 걸 즐기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물었다.

“사실 주체의 문제인데, 보수적인 사람들이 먼저 바뀐다고 기대할 수 없으니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야권성향의 사람들이 좀 더 현명하게 처신해서 사태를 극복할 수밖에 없거든요. 정치평론이 그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각오를 하고 쓰는 거죠. 욕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간혹 글 잘 읽고 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반갑고 도움이 되요.(웃음) 합리적으로는 어딘가에 내 글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듣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욕먹을 것을 감안하고도 글을 쓴다니 어딘지 비장해 보인다. 계속 맥락을 챙기고 좀 더 진전된 이야기를 하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는 한윤형 씨. 정치평론가로서 바라는 사회에 대해 안 들어볼 수가 없다.

“국가적 차원의 보험이 필요하다고 봐요. 삶의 리스크를 개인만이 감당해서는 자본주의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거든요.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도전을 꺼리고 경제도 활력이 없어지죠. 흔히 복지국가를 말하는 좌파들을 공격할 때 부자들의 몫을 뺏어온다는 개념을 떠올리지만, 사실 복지국가에서는 부자들의 행복도도 높아요. 자신도, 자식도 망할 수 있는데 그런 고민들이 사라지니까. 현재 한국사회는 리스크로 보면 농경문화가 아니라 수렵문화예요. 내가 유능한 사냥꾼이라 고기를 며칠 치 쟁여놨어도 앞으로 한 달 동안 내가 가는 길에 사냥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굶어죽는 거니까요. 거의 그런 수준의 불안정성을 개인이 감당하고 살아가는데, 불안정성이 해체되고 저마다의 내일모레도 보장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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